21개월 15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화가 나면 일기를 쓰기가 어려워서 싫다. 하루가 기억이 잘 안난다.
내일 우주랑 둘이 대전에 내려가는 게 걱정됐던 엄마는 밤기차로 우리집에 올라왔다. 그리고 서방구는 직장동료들과 늦은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다. 늦어야 10시겠지 했는데. 10시 반에 식당에서 나와놓고는 내가 좀 뭐라고 했다고 억울해해서 더 열받았다. 아니 장모님이 집에 온다는데 뭐 그리 중요한 식사자리라고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기어 들어온단 말인가.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봐도 나는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서 대기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더 열받는 건 그 중에 한 사람은 우리가 제주도에 가서 까지 식사를 같이 했던 사람이다. 집에 장모님이 오셔서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말하는게 뭐가 그리 어렵나. 심지어 지난 번에 엄마가 왔을 때도 똑같이 이랬다. 그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오늘은 다르다. 두번이면 작정했다고 봐도 된다. 애 밥하고 먹이고 씻기고 설거지 하고 내일 떠날 장거리 짐도 싸야하는 걸 아는 사람이 우리 엄마가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늦게 왔을 리가 없다. 엄마가 뭐라도 거들 수 있을 거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으니 마음 편히 늦는거다.
안타깝지만 엄마는 아홉시 넘어서 도착했고 엄마를 픽업갔다가 엄마가 들고 온 빵을 친척언니네 전달해주고 내일을 위해 차에 기름을 넣고 집에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려고 섰길래 얼른 막아섰다. 우주랑 시간을 보내달라고 밀어내고 설거지부터 해치웠다. 오밤 중에 바깥에 다녀온데다 할머니를 만난 우주는 신이나서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우주를 진정시켜 재우고 한참 지나서야 서방구가 귀가했다. 꼴도 보기 싫어서 없는 사람 취급했다. 어차피 술 마셔서 말을 섞어봐야 좋을 것도 없다. 어휴. 열받아. 잠도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