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1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다음 주엔 또 갑자기 추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흘 째 밖으로 나왔다. 우주가 너무 좋아한다. 공원에 또 가면 우주가 흙 범벅이 되어 돌아올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집 앞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짧은 걸음도 걷지 않고 달렸다. 누나들이 우주를 보고 웃긴 소리를 내주니까 빵 터져서 웃었다. 놀이터의 모든 기구가 다 버스로 보이는지 이건 손잡이고, 이건 버스 계단이고, 이건 버튼이고 하며 놀았다. 길건너에 새로 생긴 편의점에서 소시지랑 망고컵을 사서 나눠먹었다. 밖에 앉아 먹으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저녁으로는 서방구가 먹고 싶다던 삼겹살을 구웠다. 구이는 최고로 편한 음식이라는 걸 살림하고 알게 됐다. 전엔 고기나 생선을 굽는다는 게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쉽다. 냄새만 잘 빼면 할 게 별로 없다. 식세기도 얼른 돌릴 수 있게 미리 그릇을 물에 다 담갔더니 아주 수월했다. 우주도 10시 거의 다 되어 잠이 들었다. 내일은 어린이집 적응 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난다. 30분 일찍 등원해야 해서 아침 스케줄을 다 당겨야 한다. 밥도 있고 먹을 것도 준비되어 있다. 우주는 과연 두 시간 동안 나를 찾지 않고 잘 있을 수 있을까.
어제 어린이집에서 우주는 밟으면 물감이 퍼지는 촉감놀이 매트를 보고 엄청 무서워했다고 했다. 아침에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니까 움직이는 거 이제 없냐고 계속 물었다. 어제 나를 더 일찍 찾았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차에서도 안 간다고 울더니 어린이집 앞에서 선생님을 만나자 손 잡고 잘 들어갔다. 거기서도 움직이는 게 없는지 물었는데, 교실 앞에서도 또 확인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 건 아빠를 닮았다.
분명히 지난주에 아빠가 50만 원을 주고 갔는데 잔고를 보니 다 쓰고 없었다. 추가 활동비를 거기에서 내려고 했는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우주 등원시키고 카페에 앉아 일주일 간의 지출 내역을 확인했다. 격리로 입과 끼니가 늘어 식비 지출이 심하게 많이 나갔고, 우주 입학 때문에 산 게 많았다. 이때다 싶어 기본적으로 집에 필요했던 것들을 막 사기도 했다. 에휴. 그 돈이 다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서방구가 꼬치꼬치 캐물을까 싶어 목록을 정리해서 보냈다. 다행히 별 말은 없었다. 왜 이렇게 쫄리는가.
자꾸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랑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이 사람 저 사람 생각하며 서운했다. 눈을 감아도 서운함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삼겹살을 구울 때도, 바쁘게 집을 정리할 때도 그랬다. 내게 서운함이란 어떤 신호다. 마음을 돌아보라는. 씻고 고요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딱히 뭘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자책하고 있었다. 우주의 작은 실수나 고집을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내일은 좀 더 마음에 틈을 주려고 애써봐야겠다. 주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평안하다. 걱정하지 말고 차근차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