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마음이 조화를 이룬다면

by 마이문

삶에 일어난 사건을 처리할 때는 감성보다 이성을 많이 사용하기에 스스로 늘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좋지 않아 먼저 잠든 신랑 옆에 누워 가만히 오늘을 떠올려보니 일상을 만드는 작은 선택들에는 감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상이 늘 ‘사람’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결혼 전의 나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가족들과 거실에 있을 때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보통은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어서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이 되어야 깜깜한 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늦잠과 지각과 늦게 자는 일은 나라는 사람과 뗄 수 없는 것들이었고, 집에만 오면 무너지는 상상속 부지런함은 실제로 증명해낼 수 없었다. 게을렀고, 느렸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머릿 속엔 온갖 실천사항들이 가득했고, 카페에서 적어온 다이어리의 체크리스트는 늘 빼곡했으나 집에만 오면 여지없이 무너졌다.


갑자기 생각하기도 싫은 ‘엄마집에서의 내 모습’이 떠오른 건, 오늘의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 아닐까.


맘 잡고 굿즈 제작을 위한 그림을 그리려고 떠난 일요일 오후의 카페에서 급작스레 친한 언니오빠들을 만남으로 인해 아무 성과도 없이 저녁에 귀가했다. 조금 지친 몸으로 맛난 저녁을 차렸고 설거지도 깔끔히 마쳤으며, 이제 하려던 일을 다시 맘잡고 하면 되었다. 집안일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거의 먹다 그대로 잠든 신랑의 상태를 보니 영 말이 아니었다. 먼저 들어가서 자면 좋겠는데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같이 있고 싶어했다.


해야할 일과 신랑의 마음. 나는 후자를 택했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샤워를 했다. 지난 주 여행 이후로 하지 못한 빨래와 오래 묵은 화장실 청소가 떠올라 맘이 불편했다. 왜 이렇게 괜히 분주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거의 매주 출장을 떠나 없던 신랑이 함께여서 그랬다. 혼자 있을 땐 내 페이스 대로 마라톤 하듯 집안일이든 가게 일이든 그렇게 착착 해가면 됐었는데, 신랑이 있으니 뭘해도 신경쓰이고 같이 있게 되었다. 마음이 더 앞서 간거다.


엄마집에 가족들과 살던 그때도 그랬을거다. 집에만 오면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들에게 마음 쓰는 일이 귀찮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집에 늦게 가거나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만약 나 자신이 사실은 머리보다 ‘마음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더라면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마음을 쓰면 좋을지 머리를 굴려보면 좀 나아질까.


눌러둔 감성을 꺼내 사용해보려니 상상만으로도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조금 무섭기도 하다. 잘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공들여 세운 이성의 탑이 무너질까 걱정도 되고. 하지만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다시 눌러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조화를 찾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무엇이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