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
소제목처럼, 내게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란게 없었던적이 있나 돌아본다. 늘 돈과 시간에 쫓겨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먼저 내어주는 형태. 삶이란 언제나 그런것이여서 지금이라고 특별히 더 무겁고 어렵다고 단정짓지는 않았다.
다만 스스로 시간과 돈을 관리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원가정에서 독립한 지금, 미래를 생각했을 때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기분이 자꾸 든다. 쫓기는 느낌은 늘 내 일상에 존재했기에, 가능성만 바라보며 일상을 꾸려나가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차피 나그네, 하루살이와 같은 단어에 내 삶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나의 결혼이, 가정이 단지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로 지속되어 이런 불안을 낳는다면.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 되는 인생은 바라던 모양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찬찬히 내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좀 더 나아질거야.’같은 낭만적인거 말고.
생활을 이어가면 이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안정된 직장생활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사업을 시작하고 불안정한 수입과 무분별한 지출 덕에 카드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현금을 써보겠다, 미래의 나에게 기대어 할부로 승부보겠다, 그런 결심들은 빚을 해결하는데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 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
책을 읽는다던지 그림을 그린다던지 글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안한 일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렇다는 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뜻인데. 가만히 뜯어 봐도 딱히 바쁘진 않다. 그말은 ‘바쁘게 살아’라고 하기엔 중요한 과업들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다른 표현이다.
이 두가지 문제는 서로 밀접하고 또한 서로 악영향이다. 뫼비우스의 띠나 닭이냐 달걀이냐 하는 문제와 같다. 빚은 마음의 불안을 낳고 불안은 분주함으로 이어지고 분주함은 피로와 스트레스 축적이 되며 그것은 곧 게으름이 된다. 그런 내가 싫어져 또한 무분별한 지출을 하게 되며 그건 또 다시, 다시 굴레로 들어가는 길.
사실 이것은 나 자신이 마음을 정돈하지 못해 글의 힘이라도 빌려 일상을 정리하고자 시작한 글이다. 역시 분주한 마음 속 솔직한 단어를 하나라도 내어 놓는다면 실마리가 풀리게 된다. 글을 시작하며 문제의 근본적 해결법을 바로 알아챈 것 처럼.
그렇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주체가 아니다. 어딘가에 묶여 끌려가는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묶은 끈이 끌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보려 애썼다는 것. 하지만 그걸론 충분치 않다. 끈을 풀고 나와야 한다. 삶이 다른 무언가에 끌려가도록 두어서는 안된다.
어디에 묶인 걸까. 돈과 시간. 그럼 왜 묶인 채로 살아가는 걸까. 끈에서 나오려면 이 질문부터 풀어야겠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 그러나 그리 오래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