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살림

지극히 개인적인 살림 이야기 1

by 마이문

살림이란 나에게 늘 기피대상이었다. 엄마가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하는 법이 없는 일. 도와달라는 말이 나올까 봐 얼른 피하기 바빴던 일. 그건 오롯이 엄마의 몫이고 나에게는 그 어떤 의무도 없다고 여기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살림을 여자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나 태도에는 분노했다. 당시에는 깨어있는 여자의 자세인 양 굴었지만, 그건 단지 살림이 언젠가 내 몫이 되는 건 싫었던 아주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로 깨어있었다면 살림이 엄마만의 일로 여겨지지 않도록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성심성의껏 도왔어야 했다.


결혼과 동시에 살림은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나에게만 그랬다. 먹으면 설거지하고, 주기적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그보다 자주는 아니어도 물걸레질을 해주어야 하고, 빨랫감이 쌓이면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기 종료음이 들리면 빨래를 꺼내야 하고, 화장실은 방치하면 분홍색 물때로 가득 찬다는 걸 인지하고 신경 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둘 다 일을 하고 있으니까 살림은 우리 공동의 일이어야 하니 업무분장이 필요하다고 에둘러 이야기했다가 그걸 왜 칼같이 나눠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신랑이 딱 하나 담당했던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처리는 쌓이고 쌓여 곧잘 내 몫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살림이 계속 기피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몫은 반밖에 없는데 내가 다 해야 하는 일. 본인이 하겠다고 해서 두었더니 결국 다음날이 되어 내가 하게 되었을 때, 설거지가 어떻게 기쁠 수 있겠는가. 같이 앉아서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을 같이 들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결국 내가 일어나야 할 때, 억울한 마음이 어찌 올라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림이 여자의 일인 것을 분노했던 지난날의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고 느끼니 더 처참한 심정으로 살림을 대했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떨어진 건 살림 더하기 육아였다. 가뜩이나 나를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며 한 생명을 길러내야 하는 육아 세계가 당혹스럽고 어려웠는데, 그저 싫기만 한 살림까지 다시 손에 쥐려니 나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가 어려웠다. 끝내 스스로를 비하하며 매일 밤 자아가 없어진 듯한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질 것 같았다. '의미' 하나로 버텨온 인생인데, 의미 없는 삶이 되니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렇게 타들어가는데 여전히 엉덩이를 쉬이 떼지 않는 신랑을 보니 화병이 절로 났다. 그러다 문득 '잠깐, 여기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집이 안 굴러가잖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 간다고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하고 집을 나서는 신랑이 몸에 입고 있는 것은 내가 미리 세탁해둔 옷이다. 퇴근하고 돌아와 먹는 것은 내가 차린 식탁이다. 주중에 차근차근히 정리하고 청소한 집에서 신랑은 주말에 쉴 수 있다. 세끼 꼬박 이유식을 만든 덕분에 우주가 영양을 섭취한다. 주기적으로 침구를 관리해주면 우주는 쾌적한 곳에서 살을 부비며 잠을 청할 수 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나의 수고로 대장균 걱정 없는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움직이니까, 나도 신랑도 우주도 살아갈 수 있다. 살림은 우리 모두의 삶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내가 하는 살림이 누군가를 살게 하는 일이라니. 그것으로 의미는 충분했다. 살림을 떠맡은 게 아니라 선택할 이유가 충분했다. 찬찬히 집안일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의미를 찾았던 바로 그날로부터 나는 주체적으로 살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