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은 이미 일상 속에.

문서 만드는 이야기 3

by 마이문


사랑해 마지않는 볼드체 타이틀의 쓰디쓴 실패 이후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았다. 이렇다 할 영감이 올 때까지 다시 그 답답한 표를 볼 자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 그 표가 답답해 보였을까.


문서는 어디가 될지 모르겠으나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게 될 것이다. 자주 확인할 테니 자주 눈에 들어오겠지. 그런데 그때마다 강렬한 색감과 강렬한 라인에 강렬한 타이틀까지 매번 봐야 한다면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문서에 질려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꾸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문서를 만들어야겠다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첫 번째 영감은 이케아에서 얻었다. 그렇게 자주 가던 이케아인데 왜 종이를 팔고 있다는 건 몰랐을까. 아주 우연히 어린이 코너를 구경하다가 종이뭉치를 발견했고, 그 위에 얹어진 상품설명표에 꽂혔다. 바로 이거다! 누가 봐도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있는 데다가 모든 정보가 서로 자기주장하지 않고 간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홈키파 아이디어 보드에 붙여두었는데, 볼 때마다 예뻐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두 달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리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그 자리에 계속 붙어있으니 말이다.


정보들 사이에 위계가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마치 호텔 룸 안에 있는 안내문구처럼, 있기는 하나 튀지 않고 그렇다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 그런 존재처럼.



종이 위에서 마치 종이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서체는 없을까? 그 물음의 끝에 떠오른 것은 타자기에 사용하는 서체였다. '타자기 서체'로 검색해서 여러 가지 폰트를 다운로드하였는데 진짜 타자기 서체는 획이 울퉁불퉁해서 문서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타자기 특유의 엉성한 느낌을 가진 서체를 찾고 싶었다. 구글링을 한참 하다가 운명처럼 'brass mono'를 만났다!



컴퓨터가 생기지 않았다면 타자기가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탄생했을 것 같은 깔끔한 서체다. 사람으로 따지면 귀여우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같은. 이 서체라면 집안 어디에서 마주치더라도 따뜻하게 바라봐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바아아아아로 그 답답한 타이틀에 변화를 주었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던 문서에 빈틈이 생겼다. 그리고 이케아에서 얻은 영감을 사용해 표에도 변화를 주었다. 한글도 병기하고 싶었는데, 마찬가지로 타자기 서체를 써보려고 했더니 또다시 '나 겁나 타자기로 컨셉 잡았다구!' 외치고 있는 것 같아 얼른 지웠다.









그리고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서체들을 쭉 훑어보며 어울림을 보았다. 최종으로 당첨된 것은 돋움. 왜인지 모르겠지만 돋움이 자리하니 비로소 brass mono의 매력이 완성되는 듯했다.











문서의 서체를 정하고 나서 발견한 일상 속 타자기 서체들. 이렇게 영감은 이미 가까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진짜 진짜 최종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이야기가 남아있다!



(문서 만드는 이야기 4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