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Lu Oct 10. 2017

#6. 매몽점(買夢店) : 날다, 앵무새

"당신의 꿈을 삽니다."

#6


“어떤 길을 걷고 있었어요. 마치 도시 속에 있는 작은 공원 길처럼, 길 양쪽으로는 나무들이 서 있었고 콘크리트 길 위로는 흙과 자갈들이 얇게 깔렸었어요. 온몸을 덮는 따뜻한 햇볕에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 같아요. 봄이구나, 봄이 왔구나. 꿈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어린 소년이었어요. 10살 정도?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죠.” 


노인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생을 입고 살아온 듯한 정장을 벗고, 남루한 티셔츠에 구김이 가득한 바지를 입은 남자의 주말은 언제나 어색했다. 남자의 세대는 자신이 인생의 중심이 되는 것이 낯선 세대였다. 젊었을 때는 장남으로 가족의 기대를 받으며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고, 결혼 후 자신의 가족을 일군 후로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사는 것이 더 익숙한 세대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외국으로 떠났다. 남자는 혼자 한국에 남아 기러기 아빠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가족들이 떠난 텅 빈 집에서 혼자 잠을 청한 그날 밤, 태어나 처음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꿈이었지만 평생 꿈을 꿔본 적이 없던 그에게 꿈은 낯선 경험이었다. 그런 그의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일과 집 밖에 몰랐던 그에게 달콤한 일탈과도 같은 탈출구였다. 


“꿈속에서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조각난 유리의 파편처럼 머릿속에 희미한 잔상 들일뿐인데 말이죠. 꿈이었을 뿐인데도 꿈속에서 등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의 무게, 어깨 위의 가방끈을 양손으로 쥐고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 느낌이 모두 기억이 날 만큼 생생하게 남았네요. 공원은 조용했습니다. 공원 길 끝으로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저 공원, 저, 햇살이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커다란 앵무새가 나타났어요.”


남자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개인적인 유흥을 위해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언제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려 했고, 혼자 남겨진 삶이 외로웠지만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랄수록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익숙해졌고 아내 역시 해외에서의 삶에 적응해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남자와 약속했던 해외에서의 시간을 지나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들은 돌아올 비행기를 끊을 생각이 없었고, 남자는 그들에게 언제 돌아오냐 묻지 않았다. 


“커다란 앵무새가 파란색 깃털의 날개를 휘저으며 공원을 가로질러 날라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새를 바라보았는데 새가 저를 향해 날라 오는 모습을 보고 점점 겁에 질렸어요. TV에서 보았던 앵무새와는 달리 독수리처럼 커다란 날개를 지닌 앵무새였어요. 날개를 저을 때마다 하늘이 가려지는 것만 같았죠. 저는 점점 가까워지는 앵무새의 날갯짓에 등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뒤로 앵무새의 날갯짓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지요. 겁에 질려 뒤를 돌아볼 용기조차 나지 않더군요. 사실 앵무새가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거나 소름 끼치는 소리 따위를 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날갯짓과 크기, 밝은 대낮을 어둠에 질려버릴 정도로 푸르렀던 깃털에 겁이 났던 것 같아요. 그때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무릎을 털고 일어나 보니 아버지더군요. 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제 키가 아버지의 허리까지 밖에 닿지 않았기에 저를 내려다보는 아버지가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젊은 시절, 머리가 하얗게 세기 전의 아버지였죠. 아버지는 흙이 묻은 제 바지를 털어주셨습니다. 그 커다란 손이 제 바지 위로 툭툭 오가는 모습을 보며 온몸으로 안도감을 느꼈지요. 세상 모든 위험으로부터, 어떠한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시절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아버지는 제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왜 겁에 질렸냐고 물으셨죠. 저는 제 등 뒤로 날아오던 새를 가리키기 위해 그 방향을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그곳에는 새가 없었습니다. 다시 평화로운 공원 풍경뿐이었죠. 저는 커다란 앵무새가 쫓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먼지가 내려앉은 제 머리를 툭툭 털어주시며 허리를 굽혀 저와 눈을 맞춰 말씀하셨습니다. 새가 왜 두려우냐고 물으셨죠. 저는 새 따위 무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앵무새는 너무나 컸고, 저를 향해 날라 왔기에 도망쳤을 뿐이라고 말했어요. 아들이어도 아버지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이 남자인가 봅니다. 친구와 주먹다짐으로 눈에 멍이 든 채 집에 돌아와도, 아버지에게 넘어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아버지는 저를 길가로 데려가 벤치에 앉게 도와주셨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렸지만, 바지를 걷어보진 않았어요. 그저 아버지가 같이 있어 준다는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놓였습니다. 제 옆에 앉은 아버지는 산처럼 커다랗고 바다처럼 강인해 보였으니까요. 그저 아버지의 존재만으로도 앵무새가 몇만 마리가 날아와도 괜찮을 것처럼 안전하게 느꼈지요. 아버지는 제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새라는 동물은 영험한 동물로, 간혹 죽은 사람의 부탁을 받고 제 몸을 빌려준다고 하더군요. 그럼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의 몸으로 들어가 소중한 사람의 곁을 10일 동안 날아다니며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할머니는 길가의 새를 보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새를 보면 감사하게 여기라고 하셨다며 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죠. 그 이야기를 아버지도 믿으시냐고. 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웃는 모습을, 지금의 제 나이였을 아버지의 그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마주 한듯한 순간이었어요.”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가 결혼하고 몇 년 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서울로 상경한 후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그였기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의 부재함이 낯설지 않았다. 삶은 빠르게 돌아갔고,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제 할 일로 바빴다. 남자 역시 상복을 벗자마자 본인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부엌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거실에 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모든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남자는 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를 기다리는 것들을 상대하느라 남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를 꿈에서 만나고 나니 아버지에게도 내 나이의 시간이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아니 아버지에게도 갓난아기처럼 울음을 내지르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에게도 아버지를 잃는 순간이 있으셨겠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더군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삶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아버지가 아닌 김석호 라는 삶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요. 생각이 거기까지 닿고 나니 아이들과 아내 역시 나를 그저 아버지, 남편으로만 보고 있겠구나 싶더군요. 내가 아버지에 대해 ‘김석호’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저들 역시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빠와 남편이 아닌 내 삶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는 할까 그런 생각. 어쩌면 모두에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관계의 한계이겠지요.”


아내와 아이들이 떠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집이 이리도 깜깜했는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떠남과 동시에 집 안의 가구들은 침묵한 채 동면에 빠졌다. 모두가 동면기에 들어간 한겨울, 남자 홀로 잠들지 못해 방황하는 듯했다. 아내가 돌아오면 핀잔을 둘 것 같아 그는 모든 것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려고 노력했다. 라면을 끓여 먹은 냄비도 깨끗이 씻어서 원래 있던 자리에 두었다. 쓰레기통이 차면 치웠고, 잠에서 깨어나면 이불을 정리했다. 그의 물건은 원래부터 이 집에서 최소한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주인 잃은 공간들을 굳이 그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그는 정해진 물건들만 만지고, 정해진 공간에서만 생활했다. 


“아버지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더니 벤치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셨습니다. 젊은 아버지의 목젖은 청량하였고, 아버지의 어깨는 높았어요. 아버지처럼 어깨가 높아지고 싶어 저도 허리를 펴고 벤치에 등을 기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침전되어있는 기분이었어요. 고요했고 따뜻했고 부드러웠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마치 식당에서 먹는 음식처럼 짜거나 달거나 맵거나 하듯 어떤 느낌으로든 강렬히 남는다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나 봅니다. 꿈에서 깨고 나니 마치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그대로 온몸에서 받았던 것처럼 나른하더군요.”


 꿈에서 깨어난 그 날 아침, 남자는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19년을 성실히 다녔던 회사였다. 목이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출근했고, 첫아이가 태어나던 날 역시 남자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만큼은 나른한 기분이 점점 돌덩이처럼 남자의 몸 위로 쌓여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다시 바닥으로 바닥으로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다. 


“잘 때 꾸는 꿈과 흔히 장래희망처럼 말하는 꿈은 왜 단어가 같을까요. 제 생각에는 둘 다 희망을 주고 위로를 주고 기대를 품게 만드는 동시에 절망도 주고 실망도 주고 꿈은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되새김질시켜주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남자는 허무했다. 꿈에서 아버지를 보고 나니 더욱 허무했다. 나른한 꿈이었는데, 반가운 꿈이었는데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 당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결국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잊혀 갈 운명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꿈이 때로는 희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이 된다는 점에서 저 역시 손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거기에 이 노인네의 의견을 추가해도 될까요?”


“네, 궁금합니다.”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꿈이든 밤에 찾아오는 꿈이든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역시 똑같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흠, 이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 역시 누군가는 저에게 들려주는 꿈 이야기가 희망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절망이 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어보면 그 꿈이 딱히 희망적이지 않은데도 그 꿈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꿈이 딱히 절망적이지 않은데도 그 꿈속에서 절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꿈 역시, 상황이 내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고 내 노력과 내 열정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그 속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 있고 그 속에서 절망을 보는 사람이 있지요. 결국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꿈이든, 밤에 찾아오는 꿈이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남자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앵무새 꿈을 꾼 후로 자신이 느끼는 공허함이 우스워졌다. 꿈은 따뜻했다. 꿈속에서 남자는 아버지의 위로를 받아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난 후 남자는 꿈속의 10살 소년으로 돌아간 듯 휘몰아치는 자신의 감정과 질문들에 자꾸만 목이 매였다. 


“먼 미래의 꿈을 꾸지도 못하고, 밤에 찾아오는 꿈을 막지도 못하고. 저는 어느 꿈이 되든 꿈과는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남자는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이렇게 자신이 텅 빈 사람이 되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감정표현이 익숙지 않아 아내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무뚝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었지만, 아버지로서나 남편으로서나 부끄러울 것 하나 없이 행동했다고 자신해왔는데 왜 아내가 자신을 떠난 것인지, 두 딸은 질문이 없으면 침묵뿐인 의무적인 전화를 걸어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왜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텅 빈 채로, 굳어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감정들에 휩싸여 마치 꿈속의 소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해본 적이 없었다. 무너진 둑에서 터져 나오는 물길처럼 남자의 감정은 남자의 머리 위로 퍼붓기 시작했다. 


노인은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작아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작아져 가는 남자를 위해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노인도 이 남자의 나이를 걸어왔고 이 남자가 느꼈을 감정들을 거쳐왔지만, 그 나이의 무게는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무게였다. 노인은 그저 이 남자 역시 그 나이의 무게를 잘 추슬러 걸음을 멈추지 않기를 속으로 바랬다. 


“저는 값을 치르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값을 줄만한 꿈도 아니었고, 누군가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본 것도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노인을 모른 체하고 갈색 문을 나선 남자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든 상관없었다. 그저 새의 몸을 빌려 가족이 살고 있는 낯선 땅으로 향하고 싶었다. 날개를 휘저어 바람을 타고 구름을 건너 바다를 넘어 해가 떠있을지 달이 떠있을지 모를 남자를 잊고 사는 가족의 집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5. 매몽점(買夢店) : 베이글 가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