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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Lu Jan 25. 2021

유서를 쓰기로 하였다

달리 어디가 아파서, 빨리 가고 싶어서 쓰기로 한 것은 아니다.

유서를 쓰기로 하였다. 


달리 어디가 아파서, 빨리 가고 싶어서 쓰기로 한 것은 아니다. 2020년에 다짐했었던 몇 가지 일 중에서 가장 빠르게 해낼 수 있을 일이라서 작정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서'라는 단어는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그 자리에서 이것을 발견하였다 라는 뉴스 기사 통해서 혹은 영화 속 부유한 재벌이 죽고 나면 변호사가 무미건조하고 마른 말투로 읽어 내려갔던 그 무엇으로 흔히 쓰이는 것 같다.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마음도 전혀 없고,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인생역전의 기회가 될 정도로 남길 유산도 없지만 유서를 쓰기로 하였다.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실제 현직에 종사하는 의사가 쓴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현실과 의사로서의 생각, 그리고 그녀 스스로 생각하는 '죽음'을 잘 준비하는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죽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 죽음을 배우는 시간, 김현아 지음-


30여 년의 내 생에 죽음은 2번의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다. 


치매에 걸려 어눌해진 말투와 멍해진 시선, 그 끝은 약 1년여간 병원을 오가며 결국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던 친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은 알지 못한다. 할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정리할 만큼의 의식이 이미 오래전부터 없으셨던 것만을 기억한다. 온몸에 연결한 선과 이미 의식이 없는 할머니를 오래도록 보내지 못했던 가족들은 병원비 때문에 적지 않은 빚을 지어야 했고 부모님은 번갈아가며 할머니의 병간호 수발을 들어야 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외할머니는 친할머니처럼 뇌졸중과 고혈압, 당뇨 후유증 같은 질병은 없으셨지만 몇 년 전에 시작된 치매로 딸과 손녀를 구분하지 못하셨었다. 더 이상 거동이 불가능해지고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시점이 오자 엄마와 형제들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에 운 좋게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병원에서 할머니는 작은 침상에 몸을 누인 채 작고 앙상한 모습으로 엄마 이름으로 나를 부르셨다. 딸인지 손녀인지는 알지 못해도 그래도 자기를 만나러 와서 자기의 손을 꼭 잡은 누군가가 반가워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흘리셨다. 


'반가워, 반가워. 고마워, 고마워'


이모들과 외삼촌은 본인들의 경제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요양병원을 수소문하여 할머니를 모셨고, 형제가 많은 덕분에 매주 주말이면 할머니의 침상 주변에 할머니의 손을 잡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오래되고 차가운 병원이었을 그곳에서 할머니의 마지막은 어떠했을까. 할머니가 원했던 마지막이었을까. 


나의 부모님의 노년의 삶에 내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나의 부모님은 본인들의 마지막을 어떻게 원하실까. 묻고 싶지만 물을 수가 없다. 묻는 것만으로도 부모님 가슴에 상처 주는 일인 것만 같아서, 이미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죄인인 것 같아서. 알아야만 할 것 같은데 알고 싶지 않다. '죽음'이라는 것이 준비가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 머리와 마음이 싸우는 일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죽음에 대해서 만큼은 미리 준비하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내 죽음에 대해 내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내게 미리 묻지 못했던 것에 괴로워하지 않고 이미 크나큰 상실감 속에서 슬픔을 이겨내고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판단해야만 하는데 대체 그 기준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 의지와 의견에 기대어 선택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유서를 쓰기로 하였다. 


언제 이 유서의 쓰임이 발휘할지 알 수는 없으나

내 의지대로 내 마지막이 정리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으나

내 유서의 존재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괜한 상처와 괴로움이 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리고 오빠. 

 

먼저, 제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있어서 이런 유서를 미리 남기는 것이 아님을 이해 부탁드립니다! 죽고 싶은 마음에 남기는 유서도 아님을 꼭 이해해주세요. 저는 누구보다도 지금의 삶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언제부터 인가 ‘죽음’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떠나보낼 두려움을 갖고 있고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반면 나를 보낼 준비는 내가 과연 얼마나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준비한다고 준비될 수 없고, 항상 부정하고 싶은 현실입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나이, 성별, 재력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오는 일이 잖아요. 우리 사회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대해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최근 읽은 책을 통해서 ‘유서’라는 것이 남길 유산이 많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고 누구나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깊이 공감하였고, 나부터 그 준비를 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유서를 써보면서 내가 지금의 내 삶에 대해 얼마나 행복하게 누리고 있는지, 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내 곁에 있는 우리 가족과 오빠, 그리고 테오에게 깊이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어요. 아래 내용은 즉흥적으로 작성한 것은 아니고 5개월 정도 계속 생각해보고 수정하면서 작성한 내용입니다. 유서라는 것이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서면으로 남겨야지 법적인 효력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공증 등의 절차를 더하면 좋겠지만, 그 정도의 내용은 아닌 듯하여 서면 정도로만 작성해 둡니다. 물론 생각이 바뀌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재작성해서 남기겠습니다. 제가 이 유서를 가지고 있어 달라고 말했을 때 그 충격이 그나마 덜하고 제 생각을 존중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이 되어 언니와 신랑에게 각각 한 부 씩 드립니다. 혹시나 엄마 아빠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이 유서를 확인해고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남겨지는 분들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만큼 ‘죽음’이 괴로운 끝으로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고, 따뜻하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기다릴게요. 사랑합니다. 

 

1.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의식이 없고 제 치료 방법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나서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수준이라면, 1개월 안에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죽음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마음 아픈 결정이 되겠지만, 죽음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강제적인 의료 기술로 연명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존중해주세요. 


2. 장기 기부를 희망합니다.

저는 장기기증 신청인으로 저의 사체를 포함 장기 기증이 가능한 모든 조직과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3. 보험을 확인해주세요.

저에게는 몇 가지 보험이 있습니다. 중태 또는 사망 시 아래 보험들을 확인하여 필요한 부분을 진행해주세요. 


*중략


4. 장례는 예배식으로 해주세요.

기독교 가족이라 예배식으로 해주시겠지만, 가능하다면 *** 목사님이 예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례식을 알릴 지인 연락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중략


5. 저는 화장해주세요.

땅덩어리도 좁은 나라에 육신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저는 화장해서 제주도 *** 부근의 *** 해변에 뿌려주세요. 제주도를 혼자 여행 갔을 때 그 근처 숙소에 머물렀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이 참 좋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보고 싶다는 핑계로 제주도 여행도 자주 오셨으면 좋겠고, 멀다는 이유로 자주 못 오는 것을 덜 미안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6. 제 물건은 이렇게 처분해주세요. 


*중략


너무 저의 부재에 오래도록 가슴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웃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미안했던 일이나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거든요! 모두 다 각자의 삶을 모두 누리고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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