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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문 Aug 18. 2023

모든 것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좋은 관계를 찾아 나가는 여정


관계가 무엇인지 처음 생각해 본 순간

중학생 때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을 다닌 적이 있다. 정보영재반이었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아마 함수에 대한 내용을 배우던 날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한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문근영과 너는 어떤 관계야?”

당시 문근영은 국민여동생으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반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질문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질문을 받은 친구들은 하나 같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문근영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관계가 없는 게 아니라고 하며 “아무 사이가 아닌 관계”라고 말씀하셨다. 관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생각해 본 순간이었다.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사이에도 다 관계가 있다. 그러나 관계라고 이름 붙는다고 해서 다 같은 관계는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관계가 시작된 부모님과 가족,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부터 오늘 아침 현관에서 문을 잡아준 이웃 주민까지. 그중에는 좋은 관계도, 그저 그런 관계도, 나쁜 관계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자신으로 존재할 것

어렸을 때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만 성인이 되면 지인이 늘어날 뿐 친구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사회화되었다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는데 달리 말하면 진짜 내가 아닌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나를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직업적 특성 때문에 사회적 자아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객을 직접 응대할 일이 많은 직업이라면 아무리 내가 다혈질이라도 성질을 누른 채 친절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 속에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다면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해보자. 스스로 불편할 뿐 아니라 상대에게 신뢰를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Embrace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 누구나 자신만의 특이한 구석이 있다. 내가 모든 사람의 특이한 구석을 좋아할 수 없듯, 세상에는 나의 특이한 구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모든 면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서로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된다. 3000만큼 좋아하는 모습이 있고 1만큼 좋아하는 모습이 있겠지만, 1만큼 좋아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에 그냥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 모든 순간이 3000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태도.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 관계는 모두를 위해서 유지하면 안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갈 것이고 상대는 곪아갈 테니 말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진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중학교 시절 문근영과 나는 각자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무 사이가 아닌 관계였던 이유는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쪽이 상대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이 관계는 언젠가 끝나게 될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서로 0을 초과하는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그 절댓값을 계속해서 키워 나가야 한다. 적어도 악영향을 주고 있는 나쁜 관계는 아니어야 의미를 가진 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좋은 관계로 자신의 주변을 채우고 싶다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와 동등한 무게로 내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좋은 관계를 찾아 나가는 여정

첫 단계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끄럽거나 창피해서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을 당당히 직면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으로 존재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로 존재하는 것이 익숙해졌다면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나도 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시도해야 한다. 성공하는 시도도 있고, 실패하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실패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저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상대를 만난 것뿐이다. 성공한 시도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관계는 양방향이라는 것 외 한 가지 특징을 더 가지고 있다. 바로 ‘영원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좋은 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희미해져 지금은 거의 사라진 관계가 모두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서로 주고받는 영향이 없어지면서 관계의 끈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왜 좋은 관계가 필요한가?

모든 것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진부한 표현처럼 벗어날 수 없다면 좋은 관계로 주변을 채우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관계의 덫에 갇히느냐, 관계의 궁전 속에 머무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을 쓰다 문득 떠오른 영화장면>

출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꼭 3000만큼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0보다는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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