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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Oct 21. 2020

개는 극단의 세상에 산다

임시보호 1개월 체험기


길거리를 배회하다 보호소에 수용된 개들은, 시한부 인생을 산다.  작은 몸에 암덩이를 안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 저마다 마지막 날짜를 부여 받는다. 부여받은 마지막날이 되면 견사의 철문이 무심히 열리고 개는 어디론가 끌려간다. 개의 심장박동은 평소보다 빠르다.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주사 한방을 맞는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인간이 그러하기로 결정 하였고, 개의 생명활동은 천천히 정지된다.  


제주에서 구조되었다면서 아내는 '임시보호' 라는 이름으로 우리집에서 한달여 머물기로 했다는 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대로 두면 그 개는 곧 안락사를 당하게 된다며 나를 설득했다. 개를 '입양'하는 것은 여러모로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는데 '한달' 이라는 기한에 못 이긴 척 임시보호를 받아들였다. 녀석의 이름은 '알루' 다.  Hello 를 변형하여 만든 이름 같아보였다.


처음 며칠간은 기가죽어 쭈볏거려서 4개월밖에 안된 새끼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내 적응하고는 극단의 세상에 산다.  

밥을 먹을 땐 밥그릇이 혀에 붙어 딸려가도록 핥아대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현관에 나와 꼬리로 회초리를 치듯 흔들면서 달려든다. 개껌 하나를 물려 놓으면 몇날 몇일을 까득거리면서 씹어대도 지겨워할줄을 모른다.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통에 코를 박고 우주를 들여다보듯 신비롭게 탐험하는가하면, 입에 물고와 던진 공을 지치지도 않고 좇아다닌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내고도 늘 새우잠을 자는데, 코까지 골며 자는가 싶다가도 자그만 소리만 나도 코를 벌름, 눈을 슬금 떠 내 안위를 살핀다.  말못하는 짐승이 똥오줌을 가리고 인내심을 갖고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영특하다.


다섯덩이 살집으로 이루어진 두툼한 발바닥은 말랑하고 따뜻하다. 말랑하지만 거친 길을 쉴새없이 달려도 어디에 찔려 찢어지는 법이 없고, 따뜻함은 엄동설한 겨울 숲을 헤매도 얼어붙을 줄 모른다.  발바닥만 보더라도 개는 인간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인간의 손에 길러지고 인간에 의해 죽게 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을 따르는 개의 삶이 처량하고, 억울함을 말 할 길 없는 처지가 딱하다.


하루에 두번 씩 산책 시키는일이 번거로워 이녀석 언제 가나 싶은날도 있었는데, 시간은 꾸준히 흘렀고, 빠르게 흘렀다.  입양처가 정해져 알루가 떠나는 날짜를 확인 받은날 아침, 아내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다가 울었다.  떠날 날이 정해진날에도 알루는 꼬리로 방문을 때리듯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천진하게 먹었고 부지런히 놀았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녀석의 산책길에 나서 나름대로 카메라에 추억을 담았다.  집에와서 사진을 확대해보니 알루의 검은 눈속에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나는 알루를 사진에 담았고, 알루는 나를 눈에 담았고, 나는 다시 그 눈을 내눈에 담았다. 담고 담기는 과정에 개와 나의 인연이 오간다.  


해외로 입양되는 알루는, 오늘 인천공항에서 케이지에 담겨 화물칸에 실렸다. 이동을 맡아주신 담당자분이 동영상을 찍어 우리에게 전송해 주었다.  알루는 처음 우리집에 왔던 날처럼 기가죽어 케이지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공항 바닥의 이음새에서 수레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안쓰러웠다. 겁이 많은 녀석이었다. 딱 한달 함께 했을 뿐인데, 상실감은 컸다. 수년 동안 키우던 개가 죽게 되었을때의 심정을 표현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감히 내가 알 수 있는 수준의 감정이 아닐 것이다.


개는 극단의 세상에 산다. 중간은 없다. 매순간을 최선을 다해 산다.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때도, 놀때도, 쉴때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생을 누빈다. 4개월 난 개 한마리는 나에게 세상 사는 법을 알려주려는 듯 했다. 세상의 모든 개들이 그럴 것이다.  


개를 잡아먹고  욕설에 애꿎은 개를 빗댈 일이 아닌듯 싶다.  

어딜가든 행복하게 잘 살으렴. 오래 생각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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