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삶에는 우연은 빗발치듯 쏟아지는 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불리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그것이다. 예기치 않은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거나 만나는 순간 우연의 일치가 존재한다
2023년 7월, 회사에서 후원하는 '클럽M의 정기연주회'에 서울아트센터로 아내와 가던 날, 나는 무언가 마력에 빠지는 우연을 만났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우연의 일치는 완전히 모르는 채 흘러간다. 목관악기 대신에 현악기 연주회였다면 나의 시선을 집중시키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콘서트홀 나무벽에 부딪쳐 사람들의 정수리를 쓰다듬고 나의 가슴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그 따뜻하고 어딘가 막힌 듯 맹맹 거리고, 때론 하늘을 뚫으려 솟구치는 용트름은 오늘 1일을 약속한 수줍고 조심스러운 사랑으로 나의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나는 이 소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떤 악기인가라는 열망은 배우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뀐다. 어느새 기다란 피리같이 생김새의 반짝이는 금속을 유튜브에서 하나씩 찾고 있었다.
클라리넷 '이렇게 음색이 낮진 않았어. 좀 많이 답답하네',
플루트 '이건 완전 아니야. 너무 높고 시원한 시냇물 소리잖아',
바순 '어, 이거 좀 맹맹 거리는 게 비슷한데. 그런데 뭔가 모자라',
'아, 가슴이 천천히 뛰려고 해. 심장이 두근거려. 어, 이게 뭐지? 나의 막히고 거친 호흡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바로 이 놈이야!'
오보에였다. 입력창을 두드렸다.
가장 많이 검색된 것, Gabriel's Oboe (즉 Nella Fantasia)였다. 짧게 편집된 "The Mission"이라는 영화에서 어떤 선교사가 이구아수 폭포를 힘겹게 기어올라와 마을로 가기 위해 아마존 우거진 정글에서 낯선 길을 찾는다. 새로운 침입자에 그 땅의 주인들은 환영할 일없었고, 여기저기 울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밝음을 보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뒤엉켜 고통받았던 나무들로 기괴하기만 하다. 싹을 틔우고 한 번도 밟혀 본 적이 없는 이름 모를 식물과 풀들. 축축하고 어둡고 습한 공기... 그 사이 카메라 앵글은 누군가 놓은 덫에 걸려 매달린 이구아나를 비추면서 거의 다 왔다는 잠시의 안도로 숨을 고르며, 작은 바위에 앉아 보퉁이를 열어 헝겊에 싸여진 악기를 꺼낸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집은 키는 "파#, 라, 파#, 라"를 몇 번 반복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끝없이 펼쳐진 웅장한 산맥들과 겹치면서 40년 전,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으로 이끌었다. 1986년 크리스마스에 개봉된 영화. 호암아트홀에 나는 홀로 앉아 있었다. 갓 사귄 연인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질투하며, 팝콘과 콜라를 바쁘게 옮겨다는 손들. 영화관속 매쾌하고, 관중들이 뿜어내던 거칠고 무거운 호흡들이 아련한 기억으로 생생히 떠 올랐다. 무엇보다도 기억의 산너머 깊은 옹달샘 속에서 그 소리는 40년을 담아내고 있었다. 한줌 퍼내기 위해 지난 4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백년을 넘게 무엇을 위해 그리 숨 가쁘게 달려왔는지? 필연에 의해 일어나는 일,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우연만이 나의 입꼬리를 살포시 들어 올렸다. 무당들이 상에 뿌린 한 줌의 쌀로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나는 우연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집중한다.
'오보에를 배우자! 3년만이라도 제대로 불어보자!‘
콘서트홀 나무벽에 부딪쳐 나의 가슴으로 내려앉은 그 소리를 잊지 못한다. 어디선가 이 소리를 우연히 레코드 가게를 지나면서, 드라마 배경 음악에서 스치듯 들을 때마다 잠시 멈추고 나는 40년을 품은 옹달샘을 표주박에 담아 홀리듯 마시고 있었다. 그 순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찬란한 빛에 물들어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수없이 스쳐가는 우연 속에서 나는 따뜻한 소리에 홀려 오보에를 배우고 있다. 50 중반을 넘어 시작했지만 음악을 전혀 몰랐던 나는 악보에 도, 레, 미를 그려 넣어야 했다. 아내는 내가 박치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딸아이는 "아빠, 그래도 악기를 하나 다루니 정말 세상이 다르지?"라고 응원을 했다. 정말 그랬다. 음표, 쉼표, 리듬으로 소리를 그릴 수 있는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나의 동료는 그 나이에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묻는다. 그럼 난 "느즈막이 시작했으나 아직 내 청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오보에는 최고의 선택이며 나에게 준 행복한 선물이었다."라고 말하고 그저 웃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아직도 나에게는 사자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외침이 있다. '내 안에는 사자의 피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