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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날을 계수케 하소서!

성경 100독을 향하여!

by 김세환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 적어도 세상을 사는 운명에 있어서는 최초의 평등이다. 이전에는 다 같은 어둠, 지금은 다 같은 육체, 머지않은 날 다 같은 한 줌의 재이다. 100세 시대라 하지만, 문상을 가보면 그렇게까지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의 경우 70대~80대 사이이다. 100세를 살고 싶다는 우리의 희망과 늦어지는 죽음의 불안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보험회사의 교묘한 상술이 숨어있을지 몰라 씁쓸하다. 여하튼 나는 이미 반백년을 넘겼으니, 일반적으로 나의 남은 날은 짧으면 20년, 길면 30년이다.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회사에 십분 양보하여 아무리 길게 잡아도 오십 년은 넘지 못한다. 남은 날이 정말 얼마 없구나!!!

얼마 남지 않은 년수를 매일 기억하는 것, 이것이 어떤 의미를 나에게 던져주지는 않을까? 매일 남은 날을 기억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책꽂이에서 성경책을 꺼내 들었다. 구약이 1,331쪽, 신약이 423쪽이니까 합치면 1,754쪽이네. 나누기 365일 하면 5쪽씩 매일 읽으면 1독은 하겠네. 앞으로 30년 가정하고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100독을 하려면 적어도 1년에 3독은 해야 하고 매일 15쪽씩 읽으면 되겠지. 그럼 하루에 30분 정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이라는 약속의 부담감은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한 번 어떤 일에 부딪치면 사람들은 무서움이 없어진다. 오직 미지의 것만이 사람들을 무섭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무릅쓰면 그것은 더 이상 이미 미지의 것이 아니다. 그날부터 이 규칙을 지키며 4독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읽음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나의 날은 모래시계와 같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매일 루틴은 나의 날을 기억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지겨움들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권태들이, 유튜브를 즐기던 것들에서 다른 새로운 것으로 찾아왔다. 얼마 남지 않는 인생가운데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오보에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고 싶었는 데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오래전 가방 안에 묵혀뒀던 사진기도 꺼내 렌즈의 초점을 확인한다. 그림도 그리고 싶다. 직장에서의 시간 메우기에 싫증을 내고, 복도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한 장 줍기에 기쁨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생생한 기쁨을 느끼듯 소원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남은 날들 중 수많은 일들이 하루를 지나 1주일을 넘는다. 하루에는 하루의 커다란 장애물과 또 작은 고민거리들이 있다. 어제는 가까운 친구의 건강을 근심했고, 오늘은 또 나의 건강을 걱정한다. 내일은 돈이 없는 불안이 찾아올 거고, 모레는 나를 놓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또 그다음 날엔 친구의 불행이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먹구름이, 불평하는 너투리가, 어디서 잃어버린지도 모른 물건이, 그리고 절정의 기쁨이, 또 세상일이, 마음의 고민들까지 끊임없이 밀려올 것이다. 하나의 구름이 흘러가면 또 하나의 구름이 흘러오는 것과 같다. 100일 중 단 하루도 온전한 기쁨과 온전한 태양을 갖게 된 날은 없다. 이렇듯 우린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에, 오지도 않은 고민 하나하나에, 나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 하나하나에, 언젠가 최초의 평등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살았던 흔적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의 세대만 잠시 내가 죽은 날에 나의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년수를 매일 기억하면, 이것이 어떤 의미를 나에게 던져주지는 않을까?'라는 고민으로 시작된 '내 평생 성경 100 독하기'의 계획은 나에게 '매일성경 읽기'의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1독, 2독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년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든 반사되는 빛은 엷어지는 법지만, 나의 남은 날을 기억하는 이 도전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엷어지기는커녕 한층 더 밝은 빛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오고 더욱 아름답게 작용한다.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목록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같이 함께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할 사람과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와 읽고 싶은 책들, 그림 그리기, 오보에 배우기, 네모세상 보기 등 나의 날수가 줄어드는 만큼 시동을 걸 조건들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시간이 무한히 주어진다고 우린 행복한 망각을 하며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애써 숨기며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최초의 평등으로 언젠가 돌아갈 것이다. 그 평등 앞에서 만큼 난 진솔하게 외치고 싶다.


"나의 날을 계수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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