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mainzkim/1)에 썼었다. 이 글은 그 후속편이다.
나는 오보에를 분다. 오보에(Oboe)는 옛 프랑스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hautbois(오부아)'였는데, 프랑스 말로 'haut(오)'는 '높다'는 의미이고 'bois(부아)'는 '나무'이다. 즉, '나무로 만든 높은 음역의 악기'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음역대도 채 3옥타브가 되지 않는다. 다른 악기의 음보다 잘 들리고 길고 고르게 멀리까지 뻗어나가기에 오케스트라에서는 오보이스트가 '라(A)'를 불면 다른 악기들이 그 음에 맞혀 조율하는 기준음이다. 이 기준음은 오케스트라마다 조금씩 달라서, 400-443Hz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개 독일 악단은 기준음이 높은 편이고, 미국 악단은 좀 낮게 잡는 경향이 있다.기준음이 높으면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밝아지고, 낮추면 좀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기에 기준음 높이는 악단의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연주회 시작전 다른 악기의 조율을 위한 오보에 '라(A)'의 기준음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만 알아도 그 오케스트라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2023년 9월 13일에 시작해서 벌써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섯줄위에 그려졌던 수수께끼 암호들을 높이와 길이와 박자로 더듬거리며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아직 능숙하지는 않지만 더듬거리며 팝이나 가요, 찬송가들도 오보에로 불어내는 내가 자못 대견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레슨이 쉽지만은 않았다. 묘한 매력의 소리에 이끌려 도전을 했지만 오보에가 이렇게까지 어려울 줄은 몰랐다. 피리같이 생겨서 그냥 바람을 불면 소리가 나는 줄 알았다. 2장의 갈대를 얇게 깎아서 실로 묶은 약 7cm 리드 사이 1-2mm 공간에 호흡을 조절해서 "삑~ 삑~" 소리를 낼 수 있어야 비로소 오보에라는 악기에 연결해서 불 수 있다. 입술사이 떨리는 진동을 느끼며 "삑" 소리를 얻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또한 일정한 압력으로 공기를 밀어 넣어야 음이 요동이 없이 깨끗하기에 나의 얼굴은 언제나 복어처럼 빵빵해지고, 긴 호흡을 연습할 때는 숨을 참고 압력의 한계를 견뎌내느라 귀까지 빨개졌다.
2024년 8월 24일은 용인 수지 아틱아트홀에서 제2회 김덕권 제자 음악회 Summer Concert에 내 생애 첫 무대를 가졌었다. 약 2달 동안 연주할 곡 "세상을 사는 지혜"를 열심히 연습을 했고, 악보를 모두 외웠다. 무더웠던 여름,인적드문 공원에서 이 곡을 적어도 500번 이상 불렀을 것이다. 무한반복만이 나의 긴장을 풀어주리라고 굳게 믿었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연주회 2주일 전부터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여 포기를 고민했다. 연주도 시작하기 전에 그때부터 나의 손가락은 수전증 환자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한음 집기가 어려웠고, 오보에를 들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팸플릿은 이미 배포되었다. 나의 이름은 인쇄되어 대체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당일이 왔다. 아내와 딸아이만 초대했다.
아틱아트홀에 일찍 도착해 리드를 물통에 담가 불리는 동안 윗관을 잡고 아랫관과 연결하고, 아랫관에 벨을 결합해서 피리의 형태를 갖춘 후 수분먹은 리드를 시험 삼아 "삑, 삐~~~' 소리를 확인하고 마침내 윗관에 리드를 조심스럽게 마지막으로 결합했다. 2옥타브를 순서대로 불었다. 오늘은 제법 매끄럽다. 그러나 손끝을 타고 오는 미세한 떨림은 긴장의 심박수를 높여갔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나의 순서는 거의 마지막에 있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뻣뻣이 굳어가는 손가락, 거친 호흡, 오보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자동반사로 후둘거리는 다리, 먼저 연주자들의 실수로 나를 위안해 보려고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도 냉정했기에 나의 처참함을 알몸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무대에 올라선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의 전주는 시작되었고, 나는 첫음을 불기 시작해 4분을 버텨야 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다리의 힘도 풀렸다. 그러나 뱃힘과 말아 넣은 입술, 그동안 연습했던 성실의 관성으로 키를 하나하나 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마쳤는지도 몰랐다. 박수소리와 함께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뭉치가 머리를 가볍게 했다. 다시 평온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연주회는 끝났고 나는 또 다른 도전에 성공을 했다. 음악의 문외한에서 그 문을 열어졌힌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교회에서 몇 번의 독주가 있었다. 그때도 난 여전히 손이 떨려 실수를 했다.
오보에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언제쯤 손이 안 떨리고 무대에 담대히 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말했다. "저는 프로예요. 돈을 받고 연주를 하지요. 제가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무대에 올랐을까요? 그런데도 무대에 설 때마다 긴장되고 떨려요. 그런데 세환님은 아마추어고 돈도 받지 않잖아요. 무대를 저보다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실수는 아마추어에게만 애교로 용서가 되지요."
그렇다. 나는 아마추어 오보이스트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양희은 씨가 무대에 설 때마다 무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베테랑 양희은 씨도 떨며 무대를 서는 데, 내가 뭘 더 바라겠는가? 그냥 무대에 서는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즐기고 나보다 한 달 늦게 시작한 아마추어 플루이스트 병선이와 은퇴 후 유치원, 양로원, 고아원 등 우리를 불러주는 곳에서 연주하는 꿈을 꾼다. 병선이는 "우리 악기 배운 지 3년 되는 해인 2026년 가을에 지인들을 초대해서 연주발표회를 하자"라고 말했다. 나도 굳게 손가락 걸어 약속했다. "꼭, 하자!" 이것을 위해 우린 서로의 자리에서 열심을 내고 서로를 확인하고 있다.
2월 22일, 나는 다시 도전을 한다. 이번에는 한 곡이 아니다. 독주곡으로 J.S. Bach의 'Oboe Concerto, d moll - d minor, 2악장 Adagio', 협주곡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지막 듀엣곡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불어야 한다. 그 무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첫 무대보다 더 떨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사람들도 많이 초대했다. 그런데 미묘하게 밀려오는 이 짜릿함은 무엇일까? 내가 벌써 그 무대에 서 있는 것일까? 긴장이, 떨림이 나를 또 다른 도전의 자리로 이끌어 줄 수 있기에 실수해도 좋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나의 첫도전 [세상을 사는 지혜] 2024년 8월 24일 / 아틱아트홀 _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포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