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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isie Nov 07. 2020

[책]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던 기억에서 출발하여, 아버지가 걸어오신 삶의 궤적을 더듬어가는 책이다. 아버지에 대한-일종의-회고록이지만,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쟁의 폐해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토대는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크고 깊게 바꾸어 놓았는가.’ 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절묘하게 두 사람의 인연을 엮어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우연의 산물이 지금 이 세계를 살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여 그는 말한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주 미소한 일부지만 그래도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던 갈등의 구체적인 측면은 언급되지 않지만, 오랜 시간 절연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눈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병실에서였다. 기묘하게도 이 부분을 읽을 때, 1q84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덴고가 아버지의 병실을 찾아가 ‘고양이 마을’이라는 책을 읽어주는 모습. 어쩐지 햇볕이 잘 드는 병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 역시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p.62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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