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걸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발 딛고 사는 지금이 아닌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소모하려 한다. ‘우리가 집을 사게 되면, 승진을 하게 되면, 은퇴를 하게 되면’, 그때 ‘원더풀 라이프’를 마주하게 된다고 믿으면서. 그저 지금의 삶이 너무나 고되고 힘겹다는 이유로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괴로운 현재를 견디고 나면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는 ‘원더풀 라이프’에 당도할 것이라 최면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오늘, 바로 지금 우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저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 마지못해 버티고 있는 걸까?
영화는 말한다. 이미 우리 모두 ‘원더풀 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그저 우리가 견디고 버티며 살고 있는 지금의 삶 자체가 원더풀 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을 잊고 일생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남길 건가요?’
행복한 순간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온갖 불운과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생각보다 많고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았을 때 느껴지는 그 향기, 해 질 녘 뛰놀던 골목길에서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아빠가 태워주던 목마, 어느 여름날 할머니의 무릎에서 까무룩 잠이 들던 순간, 미지의 골목을 탐험하며 꼭 잡은 동생의 손, 댕댕이의 고릿고릿한 발 냄새와 몽글몽글한 털. 막상 그 순간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영원을 살게 된다고 한다면, 무엇 하나 쉽게 고를 수 없다. 우린 떠올리고자 노력하지 않았을 뿐 무수한 행복 속에서 그동안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해봤을 때, 강렬하거나 짜릿했던 기억을 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이었다.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해서 본인이 아니면 그 누구도, 그 순간 행복의 깊이와 의미를 결코 알 수 없는 순간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무심코 흘려보내는 찰나의 순간들이 그 언젠가 우리가 영원히 간직하고픈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꾸준히 쓰고, 읽으려 한다. 그것만큼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일도 없으니까. ‘원더풀 라이프’는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 인생은 이미 멋진 삶이다.
덧. 도무지 행복한 기억이 없어서 고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모치즈키의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난 그때.. 행복한 추억을 내 안에서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어. 그렇게 50년이 지나고.. 나도 말이야, 누군가의 행복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건 말이야 정말 멋진 일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