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raw"
그림의 세부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아래에 부분을 확대한 장면 몇 가지를 올려놓았습니다.
1. 이 번 그림의 주제는 '지휘자(Conductor)'입니다. 인물이 느끼고 있을 감각과 그 공간에 담겨있을 소리를 상상하며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다 보니, 지휘자의 모습이 지휘봉과 어우러진 것이 마치 마법사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생각해 보면 마법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이 '마법사(Wizard)'가 되었습니다. :)
2. 이 번 그림은, 3월 중순경 쯤에, 한 구독자 분으로부터 받은 요청으로 그리게 된 그림입니다. 당시에 조심스럽게 '음악 지휘자를 그려봐 줄 수 있는지'에 문의를 하셨고, 다음과 같은 주제를 함께 제시해 주셨었습니다.
'동작과 얼굴에 거대한 교향악을 품고
지휘하는 아주 거만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런.'
덕분에 오래전 좋은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제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전하며,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지해주고 또 그 과정에 진심으로 참여해줬던 추억들이 그것입니다.
문득, 그렇게 친구들의 진심과 더불어 즐겁고 자유로웠던 순간들이, 진정으로 행복이란 단어에 가장 가까웠던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제는, '삶을 견뎌낸다'라고 하는 말이 '삶을 살아간다'는 말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삶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또 그래서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연습'은 더 질 높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서 때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노동의 연장'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아무리 그림을 익숙하게 그린다고 하더라도, 백지 앞에서 무언가를 그려내는 일은, 나름대로의 큰 다짐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리는 그림만은 마음이 허락하거나,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행복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제겐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행복에 가장 가까운 일이면서도, 또 그것이 현실에서 저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담당하는 지금은. 억센 결심으로 해야 하는 노동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모처럼 제 작업에 진심으로 참여해주신 구독자 분의 제안이 참 반가우면서도, 그것을 기꺼이 하겠다고 시원하게 대답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구독자 분께서 주신 요청에 대해서 바로 그려드리겠다는 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대신 저의 그런 생각과 상황을 설명드리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전해 드렸습니다.
'먼저, 좋은 의견을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언젠가는 음악가 시리즈를 그려보려는 생각을 저 역시 가지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래에 말씀 드릴 사정'이 있긴 하지만, (밴드에서 받은 구독자분의 첫 요청이기도 해서) 우선은 그리고 싶을 만한 장면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싶은 것이 있을 경우'에는, 말씀하신 조건에 맞춰서 한번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런 장면을 찾지 못할 수도 있기에, 반드시 그리겠다는 '확약은 드리지는 못한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고맙게도 조심스럽게 제안을 주셨던 구독자 분께선, 마음과 상황을 기꺼이 이해해 주시고 응원으로 공감이 담긴 지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몇 분의 지휘자의 모습을 찾아보면서 몇몇 장면을 모아 두었고, 그중에서 구독자 분이 제안해 주신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한 지휘자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큰 창작의 요소를 더하지는 않았고, 최근의 그림들처럼 회화의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배경에 살짝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서, 집중선처럼 붓 자국을 넣어 채색해 보았고요.
어떻게, 구독자 분께 받은 미션을 잘 수행했는지, 보시는 분들의 느낌이 궁금해집니다.
3. 삶을 견뎌내는 일상이, 언젠가는 삶을 살아가는 일상으로 변화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고민이나 각오 없이도 누군가가 전하는 따뜻하고 즐거운 진심을 기꺼이 받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조금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들을 향해가는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