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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대 언니 Jan 31. 2023

입시지옥에서, 일하는 엄마들에게

얼마전 둘째 아이의 대학 입시가 끝났다. 


아이 하나를 기르는데 온 마을이 쓰인다는 말이 있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나의 경우, 친정 부모님 두 분의 노년이 오롯이 두 아이의 육아에 갈아 넣어 졌다.

그렇게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유년기를 보내고, 아이들이 어느정도 독립적으로 자기 앞가림을 한다라는 안도감이 들 때, 입시가 시작된다. 


입시가 공포스런 이유는 그 존재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개가 넘는다는 학교와 전공별 전형을 헤아리지 못하겠고, 입시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 선택을 하려면 내 아이를 제대로 알아야 할 터인데, 내 아이의 학교 생활을 나는 모른다. 


일하는 엄마를 따라 스페인에서 초등학교를 시작한 내 아이들을 한국의 입시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큰 아이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한국 입시를 벗어나는 대안학교로 전학을 시켜야 했다. 둘째는 일반고에 진학하였지만, 고3 담임선생님과의 첫 면담에서 아이가 진학할 수 있는 학교 리스트를 듣고 그 중에 내가 들어 본 대학이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 하던 것이 지난 봄 상황이다. 


큰아이를 위한 해외유학과 둘째 아이를 위한 국내 대학이라는 두 개의 다른 입시 시스템을 단 시간 내에 속성 과외 하듯 익히느라 애를 먹었다. 

아이 스스로 입시를 준비하면 된다는 소리는, 개인적으로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입시에 있어 엄마의 정보력은 필수요소이고, 일하는 엄마는 그 점에서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아이의 교과서, 참고서 하나 제대로 훑어 본적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의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것이었다. 큰아이 대안학교의 어머니 기도 모임에 늦더라도 꼭 나갔다. 천주교신자인데도 기독교 기도모임에서 기도를 같이 했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온 유치원 학부모들과 분기 한번 정도는 꼭 밥을 먹었으며, 학교에 자주 가지는 못하니 꼭 학기초 학부모 총회에는 참석하여 어머니들의 번호를 땄다. 


고3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내가 아이입시를 위해 준비가 전혀 안되있다는 자각에, 시중의 유명 입시컨설팅을 두개 이상 만나서 고3 아이가 어느 정도의 학교에 갈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위시리스트를 조정했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치였다.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둘째 아이도 대학에 합격하여 홀가분한 마무리가 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1등급, 2등급 치열한 경쟁에서 일찌감치 도태되어, 좀더 느슨한 분야에 응해서 인지 모르겠다.  


이 입시라는 굴레를 매해 40만 수험생의 어머니들이 똑같이 반복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온다. 일하는 엄마들도,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하는 수 밖에!

가능한 주변의 자원과 인맥을 확보하고, 아이와의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평소에 아이와 관계를 다져 놓으면 좀더 수월해질 수 있겠다.  

결국은 일하는 엄마는 돈이 많이 드는 선택을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럴때 마다 돈으로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가장 쉬운 문제다라는 생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였으면 좋겠다. 돈쓰고 마음까지 쓰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나의 경우, 밖으로만 돌던 엄마로서, 정작 아이와의 대화가 가장 힘든 과정이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도록, 아이를 위한 시간을 제대로 내지 못해온 일하는 엄마의 숙명 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두고 조바심을 내면서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던 나에게 대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동안 희생한 가족들에게 속죄한다고 생각하고, 쉬긴 기간 동안 가족에게 정성을 다 해야지”

가족 내에서의 관계도 일 만큼이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내가 엄마라는 이유 하나로 아이들이 나를 따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직장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지내온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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