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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14]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출산율 0.72 시대에서

by 꼰대 언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인 료타는 자신만큼 스마트하지 못한 아들 케이타가 미덥지 않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가정이 아이를 바뀌 키워보다가, 혈연보다 더 소중한 기른 정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제목을 이 영화에서 따온 배경은 누구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가 된다라는 상황과 결국 각자가 스스로 어머니라는 모델을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그 어머니라는 모델에는 적어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없다. 각자가 할 수 있을 만큼 다른 상황에서 이뤄내는 육아이기에.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기아 0.72명 이하로 떨어지는 지금, 내 주변을 봐도 우선 결혼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어렵게 결혼을 해서도 출산이라는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출산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우리를 지배하는데, 쌍팔년도처럼 여성의 출산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 지던 시대가 아니다 보니, 대부분 이 고비를 넘지 못하고 출산이라는 라이프이벤트에서 궤도 이탈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육아라는 과정이 마치 미리 짜인 최고급 의전을 수행하듯 정형화된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현대백화점의 메인 플로어는 어느새 수입 유명 브랜드의 아동복 팝업 스토어가 차지하고 있다. 패딩하나에 기백만원하는 몽클레어 키즈라인이 그렇게 잘 팔린다고...

좋은 유모차를 태우고, 좋은 옷을 입혀서, 좋은 유치원에 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하는 사회 분위기는 적게 낳아 귀하게 키우자, 그게 아니면 아예 낳지 말던가의 극단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최근 5년간 줄지 않았는데, 출산율이 이토록 급격히 하강하는 것은 사회의 의식 부분도 큰 몫이다. 결코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 아이를 가지기에는 돈이 없고, 집이 좁고, 내 직업이 불안정하고, 내 결혼생활이 불안정하고... 만 가지의 이유로 출산을 기피한다.


엄마로서의 나를 돌이켜보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엄마라는 역할이 당연히 수행하여야 하는 것들을 해내지 못한 때가 너무 많았다. 참관수업, 유치원 운동회, 친구들과의 플레이데이트 등등 있어야 할 곳에 없었다. 미열이 있는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가서, 선생님에게 제대로 인계하지도 못하고, 빈 교실에 아이만 남겨두고 회사로 출근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 그곳이 미국이었다면 아동방임으로 기소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엄마가 어디 다니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출장'이라고 대답했다. 출장 간다고 집을 자주 비우니, 회사 이름이 출장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한때, oo계의 ooo이라는 표현이 시쳇말로 유행이었는데, 초등 3학년 아들은 나를 '엄마계의 쓰레기'라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 쓰레기 엄마는 승진이다 뭐다해서 정신없던 시기, 친구의 배신으로 한없이 우울했던 딸의 사춘기를 전혀 모르고 지나갔다.


이제 스무 살이 넘은 아이들을 보면서, 여전히 습관처럼 일을 우선시하는 최악의 엄마인 나지만,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아직도 엄마보다는 아빠를 먼저 찾는 아이들, 집안의 왕따로서 내 위치가 한결같지만, 나와 닮은 듯 다른 자아가 사춘기라는 믿기 힘든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저렇게 성인이 되어 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 신기함은, 내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성취감과는 다른, 보다 근본적인 원초적인 감정이다. 그 흐뭇함을 느껴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아쉽다.


얼마 전 입대한 아들을, 훈련소 퇴소식에서 마주했을 때, 군복을 입고 제식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낳은 아이가 국가의 사람이 되었다는 결이 다른 감동을 느꼈다.


준비되지 않은 내가 그랬듯이, 누구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다들 그렇게 부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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