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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4] 러브 라이즈 블리딩

'델마와 루이스'로부터 2만 광년 날아온 페미니즘

by 꼰대 언니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4)은 최근 저조하게 막을 내렸다. 두 여자가 친구 혹은 연인이 되어 여러 건의 살인으로 이어지는 이 페미니즘 영화는 가히 마하의 속도로 달리는데, 비록 몇몇 장면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일지라도, 놓치긴 아까운 수작이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집중했다.


영화를 보면서 '델마와 루이스'(1991)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 남성, 기득권자 감독의 시각으로 풀어낸 당시 시대의 억압으로부터 '귀엽게' 며칠 일탈하고자 떠난 여행에서 가정주부 델마와 바웨이트리스 루이즈가 어쩔 수 없이 사건 사고에 휘말려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이다.

이 두 여인의 무고함을 알고 어떻게든 구해주려는 형사역의 하비 키이틀에게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남자들이 구해줘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서의 여성, 아름답기도 하고 매력적이고 남성의 구애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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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칭적으로,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성적 주체성이 레즈비언인 90년생 여성 감독의 시각에서 더욱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 루의 형부 폭력남편인 제이제이나 루의 아버지와 같은 남성 캐릭터의 악마성이 그것이다. 델마와 루이스처럼 희생되지 않고, 스스로를 (약물로라도) 거대하게 키워내서 끝내 이기고 마는 자기 결정성이 이 둘을 90년대 여성들과 구분한다.


영화의 시작은 집도 절도 없이,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바디빌딩 챔피언을 꿈꾸는 제키와, 무료하게 아버지 소유의 체육관을 관리하는 루의 첫 만남인데, 처음 시작부터 이 둘의 만남은 스테로이드인지 다른 부스터인지 정체 모를 약물과 함께 증폭된다.

약물의 효과인지 제키는 폭주기관차처럼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데, 크리스틴 스튜어드의 섬세한 연기로 루의 캐릭터는 이 영화의 균형을 유지해 준다. 알고 보니 루는 괴물 같은 아버지가 구축해 놓은 견고한 성에 갇힌 공주와도 같은 처지이고, 제키는 동화 속 왕자님처럼 돌진하여 루를 구해낸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 즉 맨드라미꽃 이름과 같이 핏빛 사건들 사이로, 맨드라미 꽃말처럼 두 사람의 Hopeless Love가 모든 사건의 도화선이 되기고 하고, 모든 사건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크리스틴 스튜어드가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나 다시 보게 되고, 실제 보디빌더였다는 제키 역의 케이티 오브라이언은 영화 보는 내내 나조차도 체육관에 당장 가고 싶게 만드는 생동감이 있다. 두 캐릭터 외에도 에드 해리스의 기괴한 연기와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관전 포인트다.


로즈 글라스 감독은 90년생이 이토록 완성도 높은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놀랍다.

페미니즘 영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액션 영화, 누아르 영화를 좋아한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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