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헝그리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지만, 유로 2024와 코파 아메리카, 그리고 하계 올림픽이 있어 열대야를 이겨낼 수 있었다. 심야 시청으로 인한 다크서클이 아쉽지만, 매일의 볼거리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축덕인 관계로 축구 이야기를 하자면, 유로와 코파 모두 노장들의 투혼과 10대라고 믿기 어려운 신세대 선수들의 조화로움이 어느 대회보다 돋보였다. 전통적인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 현대축구의 압박을 뚫어 내기 힘들 때, 결국 창조적인 플레이와 속도를 가진 젊은 피와 이들에게 볼을 배급해 줄 노장의 경험이 연결되어 빛을 발한다. 직장에서도 20년 경력 장인과 까리한 신입의 조화는 좋은 결과물을 내곤 하듯이.
12년 만에 유로컵을 들어 올린 스페인에게는 16세라고 믿기 어려운 플레이를 보여준 라민 야말(하말)과 역시나 10대인 니코 윌리암스의 젊은 피와 백전노장 미드필더 로드리와 수비수 카르바할의 조합이 7전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시상식에서 주장과 선배들을 제치고 먼저 앞서 나간 라민 야말에게 동료들이 "이봐! 제발"하면서 놀리는 부분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조직에서나 보는 MZ 세대의 귀여운 실수였다.
스페인과의 혈투 끝에 8강전에서 탈락한 독일도 은퇴를 앞두었던 토니 크로스, 밀러, 노이어의 노장 투혼과 밤비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03년생 무시알라의 조합에서 재기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콜럼비아 결승전에서 전반 0-0 상황에서 부상으로 교체되어 들어가는 메시의 눈물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이미 여러 차례 코파와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백전노장이 경기 중간에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럽게 아이처럼 우는 표정을 보면서 한방 맞았다. 어쩌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만족을 모르는 그 한결같은 배고픔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다행히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메시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2008년 마드리드 인근 해산물 식당에서 , 메시와 그 당시 아르헨티나 국대 감독 마라도나를 마주친 바 있었다. 단체로 긴 테이블에 앉아 감독과 선수코치 가릴 것 없이 한 테이블에 앉아, 두 시간 이상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함께하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모습이 보기 좋았다. 거들먹 대는 감독도 선배도 없이 모두가 친구 같은 모습이었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때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디에고 마라도나가 떠오른다. 아마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겠지. TMI, 내 앞을 지나가던 메시는 키가 나보다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