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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3] 달리면서 보이는 것들

여성마라톤 2년 연속 참여했어요

by 꼰대 언니

그거 알까? 바람이 선선한 초여름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얼굴에 미세한 모래가 맺혀있다.
살짝 혀 끝으로 맛보면 짭조름하다.

달리면서 흘린 땀이 모래알처럼 얼굴에 맺혀 하얀 소금 결정으로 만들어진 것,

달릴수록 혈액순환으로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 이런 소금 결정이 각질을 없애는 듯한 상쾌한 기분.


친구의 권유로 2020년 가을, 일주일에 두 번 모여, 달리기를 위한 준비운동 체조 후 참여자의 능력에 따라 레벨을 나누어 과천의 체육공원 일대를 달리는 러닝 클래스를 가입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상에 관계없이 열리는 달리기 클래스는 팬데믹 시절 나의 건강과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수업 첫날, 초보로서 "걷거나 뛰기"의 가장 낮은 레벨 반을 선택했음에도 체육공원에서 대공원까지의 2킬로가 조금 넘는 길은 아득히 멀었고, 가쁜 숨을 쉬며 주저앉다 걷다를 반복했다.

회원 중에 나와 같은 헤비급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50 평생 뛰지 않았던 기초체력은 도전에 직면했다.

쉬지 않고 뛰는 회원들이 로봇으로 보였다. 내가 여기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자기반성과 함께, 등록한 기간만 참석하리라 했던 것이 3년 동안 이어졌다.


매주 두 번의 러닝 클래스는 비록 나의 살을 빼주지 못했어도 "더 찌지는 않아요"라는 어느 회원의 말처럼 유지효과는 있었다. 느린 속도로라도 3년을 달리니 근력도 지구력도 늘어, 한 시간은 쉬지 않고 8KM 시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개과천선 아니겠는가.


이 클래스를 이끌어온 여성감독 겸 교수님은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수업은 계속된다는 원칙 하에 본인/가족 상 아니고서는 사전 예고 없이 결석을 할 수 없도록 하여 회원들의 출석을 관리하였으며, 근력, 유연성, 두뇌운동 등 각종 프로그램으로 부상 없이 달리게 해 줬다.


여름에는 땡볕으로 도로나 공원 달리기가 어려워, 주로 산에서 달리기를 하였는데, 유난히 무거운 나로서는 산꼭대기에서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과 함께 교수님께 멱살을 잡혀 계단을 끌려 올라온 적이 있다.


지금은 클래스가 문을 닫아, 속도도 느려지고 달리는 횟수도 줄어서 고민이다.

달리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인생과도 같다.


첫 번째는 힘든 오르막길 끝은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힘든 부분으로 포기했다면, 쉬운 내리막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문제를 피하는 것보다는 대비하여 직접 부딪히는 것이 더 빠른 해결이 될 수 있다. 무릎에 대한 우려로 달리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은데, 자세를 제대로 갖추고 1시간 달리는 것이 3시간 걷기보다 좋다. 달릴 때 배에 힘을 주면, 무릎에 느껴지는 체중이 줄어든다. 자세 역시, 힘들다고 구부리는 것보다 숨을 크게 들이쉴 수 있도록 가슴을 펴는 것이 호흡에 도움을 준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여, 나의 페이스가 말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반의 오버 페이스는 결국은 레이스를 완료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대회에 나가서 경쟁자들과 뛸 때 이런 과호흡과 오버페이스 경향이 짙은데, 자신의 페이스를 모니터링하면서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페이스를 과학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카운팅이나 시계 등 도구를 사용한다.


네 번째는 함께 달리기의 힘이다. 혼자 달릴 때 완성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라서 해내는 경우가 많다. 나 혼자라면 못하는 것들을 클럽이라는 공동체 내에서 때로는 리딩하고, 때로는 리드당하며 함께 목표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의 달리기 동안 조금씩 대화도 나눈다. 상대방의 상황을 파악하고 페이스 조절도 도울 수 있다.


러닝 클럽은 문을 닫았지만, 지금 수많은 러닝 클럽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일생의 취미로 러닝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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