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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5] 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몽고반점이 중국집이 아니었다고?

by 꼰대 언니

노벨문학상 수상이 대한민국을 한 바퀴 휩쓸고 갔다.

모처럼 사람들이 소설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노안과 노뇌를 핑계로 책을 멀리한 지 몇 년 되었다.

평생 책을 읽지 않던 이과 출신 나의 동거인은 몇 년 전부터 오디오 북을 듣더니 요즘은 나보다도 신간에 빠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한강과 같은 89학번 문과대 출신의 나는, 다달이 빠져나가는 구독료가 아까워서, 마케팅을 하니 최신 광고를 봐야 한다는 돼도 안 되는 변명을 돼 아리며, 유튜브 프리미엄과 유료오디오북을 싸잡아 멀리하고 있다.


몇 년 전, 다니던 프랑스 회사의 모나코 콘퍼런스를 끝나고 파리로 환승하기 위하여 탄 비행기 옆자리의 젊은 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자신이 듣고 있는 오디오북 채식주의자를 아주 dark 하지만 자신의 취향이라고 흥미로워했다. 덕분에 그와 한국의 문학에 대해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그에게 천명관의 '고래'를 추천했다. 고래도 작년에 부커상 후보에 들었고, 어두운 작품보다는 밝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단원을 향해 치달리는 판타지였다.


나는, 채식주의자의 한 파트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 중편 "몽고반점"을 통해 그녀를 처음 접했다. 몽고반점이라는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소시민의 애환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제의 몽고반점을 향한 형부의 집착과 욕망을 내밀하게 그린 탓에 적쟎이 당황했고, 또 적당히 그 외설스러움을 즐겼다.

매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읽어 온 터라, 여느 해와는 결이 다른 '몽고반점'이 준 충격은 신선했다.

(누구는 엉뚱하게 식물인간 읽어 봤니?라고.. 나이 들면 이쯤의 치환은 애교로 봐주련다)


채식 주의자는 일상 안에 익숙해진 폭력과 강요를 한강 작가만의 감수성과 섬세함으로 아프고 극단적으로 부정하면서 나처럼 둔감한 사람들이 무심코 휘두를 수 있는 말의 엄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직 읽지 못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 따듯하던 89년 봄 종합관 한구석에서 마주쳤을 법한 그녀를, 친밀히 여기면서 곧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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