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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6] 여자력과 남자 사용설명서

때로는 그립기도 한 그때이야기

by 꼰대 언니

넷플릭스에서 실로 오랜만에 영화 남자 사용 설명서를 보면서 낄낄 댔다.

2013년 이 영화는 b급 영화 특유의 병맛 재미와 그 당시에는 듣보잡이었던 주연 오정세의 명연기가 대단했다. 더하여 감칠맛 나는 박영규 아저씨와 이시영배우와 어우러져 나에게는 최고 B급 영화로 각인되어 왔다.


주인공 보라는 연출부 PD로 남자들로 둘러 싸인 업무 환경에서 야근과 모든 총무 업무를 도맡아 하는 등 고군분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사람인 감독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중요한 PT 자리에서는 제외되기 일쑤이다. 게다가 같은 건물에 입주한 영화배우이자 CF 모델인 승재는 보라의 CF 촬영 프로젝트에 있어 최대의 난제이다. 우연히 손에 넣은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일종의 자기 계발 비디오를 통해, 일도 사랑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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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팔년도 주제이지만, 매 장면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미장센은 놓치기 아깝고, 장면마다 살아있는 웃음 포인트는 (방구석 1열에 패널로 가끔 나오던) 이원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 있다.


'남자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은 일본에서 2009년 신조어로 부상한 "여자력"으로 쉽게 치환된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하는 힘. 또한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힘'이라고 일컬어지는 여자력은 , 스테레오 타입으로 정의되는 여성다운 태도나 용모, 여성만의 감각과 능력을 생활이나 직업에서 최대한 극대화하여 소속된 준거 단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핵심 경쟁력으로 묘사된다.


그 당시... 그러니까 2010년대 나도 인사팀장 출신의 인생 선배님으로부터 비슷한 조언을 들은 바 있다.

평소 해외 영업을 한답시고 술과 접대를 주 종목으로 어디서나 호기롭고 호방하다는 평을 듣던 나에게, 그렇게 강하고 활달한 모습만 보이면, 조직에서 경쟁자로 인식되고, 남자 후배들로부터도 적당한 도움을 받기 힘드니, 때로는 여성스러운 모습도 보여주라는 요지였다.


돌아보자면, 대기업 공채 1세대로서 부서원 10명 중에 여성은 1-2명이던 시대였다. 그 나이까지 일하는 여자가 흔치 않던 조직이었던 탓에,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서 일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주위의 이해도, 도움도 받기 힘들던 시기였다.


지금은 어떨까? 여성의 일터에서 비중은 30% 이상은 되는 것 같고, '여자력' 혹은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면 이상한 여자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 사회 분위기에, 생수통 내가 갈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되는 시대이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분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일자리가 적다 보니 그 적은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자리싸움은 치열해지고,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로서 서로를 인식한다. 정치권도 한몫한다. 투표권자를 남과 여라는 카테고리로 가르고, 이대남, 이대녀를 구분하여 네 편 내 편 가르고 있다.


여자력이라는 단어도, 남자사용 설명서도,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쓸모없다.


그땐 그렀었다고.

돌이켜봐도, 동료나 후배들이 나를 도와줬던 순간은, 여자력을 발휘하던 순간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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