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로그인만 해도 지치는 당신을 위하여

내가 본격적으로 한 건 로그인밖에 없는 것 같은데

by 하루단


2. 로그인만 해도 지치는 당신을 위하여


출근길은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로 북적인다. 말레이시아는 산유국이라 기름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자차로 출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지하철 안은 한국의 지옥철의 명성에 미치지는 못한다. 7시 20분쯤에 타면, 좀 낀다, 싶은 정도? 물론 7시 반을 넘어서 타면 살벌하게 낑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전히 지하철을 애용하는 나로서는 한국의 지옥철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감사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시스템에 로그인하고 일할 준비를 시작한다. 일이 많은 시즌에는, 로그인하는 순간 벌써 로그아웃하고 싶어진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삐 움직이며 이것저것 일할 세팅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벌써 지친다. 뭐지, 내가 본격적으로 한 건 로그인밖에 없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일할 시간이다. 집에 가서 한숨 자고 싶지만 이제 막 아침 9시를 가리키는 시계는 어불성설이라는 표정으로 초침을 째깍인다.


고객사와의 소통은 주로 서면으로 진행되지만, 전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솔루션과 기술적인 부분을 차치하고라도, 소통 능력은 정말 업무상 없어서는 안 될 스킬처럼 느껴진다. 그 스킬을 갈고닦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바람 빠져가는 풍선이 되는 날이 있다. 이메일을 뚫고 튀어나오는 듯한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나를 찔러대는 날. 업무상 협업이 필요한 타 부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칼날처럼 느껴지는 날. 그런 날에는, 나는 참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매거나, 집에 돌아가서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진다.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건지, 뭐라도 내게 선물을 해야겠다 싶어서 소소한 플렉스 거리를 찾아본다. 내 경우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편이어서, super ring(3링깃, 천 원)이라는 말레이시아의 중독성 있는 치즈맛 과자 한 봉을 해치우거나, 발마사지를 받으러 가거나(2만 원~3만 원) ,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뒹굴거리거나(무료), 좋아하는 아로마 향을 맡는 것(예 : 캥거루 브랜드 유칼립투스 오일의 경우 말레이시아의 올리브영 같은 왓슨스나 가디언에서 큰 용량 3천 원에 구입 가능)으로 기분전환을 시도한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잠으로 도피할 때도 있다. 자고 나면 문제는 그대로 있더라도 그걸 버틸 힘과 새로운 관점이 호랑이 기운처럼 솟아나기도 하니까. 때로는 힘들다고 주변에 털어놓을 때도 있다. 불편한 사람 말고 마음 맞는 사람과 신나게 수다 한 판을 떨고 나면 텅 비었던 배터리가 꽤나 채워진 것을 느낀다. 작고 소소한 기분전환으로 다시 힘을 내며 새로운 날의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자기만의 기분전환 및 에너지 충전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할 일도 많고 사람에 치이는 경우도 많으며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을 방치하면 어느 날 번아웃에 가까워지기 십상이니까. 우리의 마음과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회사 중간 쉬는 시간에 또는 퇴근 후에 작고 소중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선물을 꾸준히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 작은 신호도 놓치지 말고 소중한 당신을 스스로 챙겨주고, 필요하면 주변에 수다 한 판 요청하거나, 또는 일에 관련되지 않아도 좋으니 털어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보자. 나처럼 슈퍼링 과자 해치우기는 건강에 그다지 좋지는 않을 것 같지만, 가끔 치팅데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에게 가져다 바치는 경험은 내일의 로그인을 위한 연료가 될 것이다. 가장 소중한 스스로를 항상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 같은 개복치 체력의 동지들이 있으시다면 특히 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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