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IT회사의 개복치, 오늘도 방전되었습니다

빠른 속도의 멀티태스킹이 지속가능함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by 하루단

IT회사의 개복치, 오늘도 방전되었습니다


내 체력이 개복치인 걸까. 일단 출근해서 새로 쌓인 일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빨리 일을 해치워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일을 하는 도중에 들어오는 다른 일들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하노라면, 일이 좀 빨리 끝난 것 같을 때가 있다. 다그닥 다그닥 말이 달리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모니터를 노려보고, 골똘히 생각하고 검증하고 고뇌하는 과정을 여러 이슈에 대해 동시에 해내다 보면, 하나씩 해결할 때보다 속도가 빠른 것 같긴 한데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유독 일이 바쁜 시즌이 있다. 이번엔 익히 알고 있던 시즌도 아닌데 업무량이 엄청 늘어났고, 한 달째 그 업무량을 팀이 다같이 버텨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폭발적인(?) 멀티태스킹을 통해 과부하된 몸을 이끌고 매일 하루하루 출근하기 바빴다. 그럴수록 들었던 생각은,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나만 이렇게 지치는 건가?’


였다. 번아웃에 가까워짐을 느끼고 있던 한 명의 개복치는, 살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엄청나게 빠르게 하려는 애씀을 그만둬보자, 완벽하려는 노력을 그만둬보자. 조금씩 스스로에게 숨 쉴 시간을 주자.’


들어오는 업무량과 속도는 통제할 수 없었지만, 통제하려는 내 마음과 습관을 내려놓는 것은 조금씩 시도 가능한 영역이었다. 고객사의 마음도, 들어오는 이메일도, 해야 할 서류 작업들에도 최대한 압박을 덜 받아보려고 해 보았다. 예전에는 ‘이건 이렇게 이 시간에 이 순서로 해서 끝나야 되는데’라는 내면의 조바심이 컸다면, 그냥 그런 조바심을 놔버렸다. 그리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조금씩 내려고 했다.


신기하겠도 지쳐갔던 몸과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그리고 멀티태스킹을 빠르게 압박감을 느끼며 할 때보다, 하나씩 너무 목숨 걸지 말고 하기로 마음먹자, 오히려 일이 더 수월하게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벼락처럼 몰아치며 완벽히 빨리 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고, 하나씩 해결하고, 부담을 의식적으로 내려놓으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임을 느꼈다.


방전되는 일은 잦지만, 스스로에게 작은 시간과 쉼과 가벼운 마음을 조금씩 제공해 주면, 배터리가 다시 차는 시간이 빨라지고 배터리의 수명도 길어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지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고자 선택하는 순간들이 모여, 스스로를 돌보는 의지의 선택을 해 나간다는 느낌에 마음에 작은 뿌듯함이 차오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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