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 노트 위로 겹쳐진
열 살의 내 모습

by 메이옌

아이의 문제집을 비추는 스탠드 불빛이 유난히 밝았다. 문제집 위의 숫자가 하나둘 늘어갈수록 내 인내심은 반대로 줄어들고 있었다. 분명 차분하게 가르치겠다고 다짐하며 앉았는데,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을 참아내기가 점점 버거워졌다.


벌써 세 번째였다. 똑같은 유형에서 숫자만 바뀐 문제. 나는 아이 옆에 붙어 앉아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화를 내지 않으려 목소리를 다정하게 가다듬었지만, 나도 모르게 말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자,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쉽지? 아까 엄마가 설명해 준 거 이제 알겠어?”

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그 대답을 믿고 싶어 하며 아이가 연필 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종이 위에 채워지는 건 내가 방금 알려준 쉬운 길도, 명쾌한 방법도 아니었다. 아이는 다시 저 멀리 돌아가는 길, 아까 틀렸던 그 막막하고 복잡한 계산법 속으로 꾸역꾸역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참아왔던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뾰족한 목소리가 기어이 튀어나갔다.


“알겠다고 했잖아! 엄마가 방금 가르쳐준 건 왜 안 써? 왜 자꾸 네 마음대로 해?”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연필을 놓쳤다. 툭, 바닥으로 떨어진 연필이 굴러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다.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지우개 가루가 흩어진 문제집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겁에 질린 채 눈물을 참으며 떨고 있는 그 작은 뒷모습. 그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어깨 위로, 수십 년 전 낡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열 살의 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알겠다는 말로 만든 비겁한 방패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숫자들이 칠판 위를 유령처럼 떠다닐 때, 어른들의 설명은 내게 닿지 못하고 늘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건 당연한 거야”, “이것만 외우면 돼”라는 말들은 나에게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고,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모른다는 고백은 곧 내가 부족하다는 증거 같았고,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꿀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알겠다’는 말로 방패를 만들었다. 이해하지 못한 마음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면 당장의 폭풍우는 피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내 앞의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의 화난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사실은 하나도 모르면서 거짓 대답을 던졌을 테다. 그리고 엄마가 고개를 돌린 사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새 길 대신 익숙한 오답의 길로 다시 도망쳤을 것이다. 거기가 비록 낭떠러지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익숙한 길이었을 테니까.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아이의 오답 속에서 내가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내 약점을 발견했고, 그걸 마주하기 싫어 서둘러 지우개질을 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를 다그치는 소리는 사실 수십 년 전, 똑똑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었다.


다시 쓰는 이름, Yen.A & Mam.A

나는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주워 올렸다. 그리고 아이 곁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미안해. 엄마가 목소리가 너무 컸지?”


아이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한 방울 톡 떨어뜨렸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내 손안에 가두고 천천히 만져주었다. 차가웠던 아이 손에 온기가 돌기 시작할 때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린 나’에게도 말을 건넸다.


‘괜찮아, ㅇㅇ야. 모를 수도 있어. 남들보다 늦게 가도 괜찮아.’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어린 나와 화해할 수 있었다. 아이는 나의 과거를 보상해 주는 존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대리인도 아니다. 아이는 그저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이라는 오답 노트를 채워가는 독립된 여행자일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지도를 뺏어 들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길을 잃고 울 때 기꺼이 곁에 앉아 “엄마도 그랬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오늘의 오답은 성장의 밑줄이 된다

우리는 다시 문제집을 폈다. 이번에는 세 줄짜리 공식 같은 건 꺼내지 않았다. 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투박하고 긴 풀이 과정을 하나하나 함께 따라갔다.


“오, 여기서 이렇게 생각했구나? 이건 엄마도 생각지 못한 방법인데?”


내 칭찬에 아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정답까지는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지만,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비록 오늘 이 문제를 끝내 다 풀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늘 우리가 배운 건 수학 공식보다 귀한 ‘서로의 마음을 읽는 법’이었으니까.


밤이 깊어 아이가 잠든 뒤, 나는 아이 책상 앞에 앉아 ‘다시 쓰는 이름’이라는 매거진의 첫 줄을 적어본다.


엄마로서의 나와 내 안의 어린 날의 나. 우리는 오늘 아이의 오답 노트를 함께 고치며, 아주 조금씩 함께 자라고 있다. 완벽한 엄마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동료는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아이 문제집 위에 어떤 오답이 적힐까. 이제는 그 오답조차 기다려진다. 그건 우리가 더 자랄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예고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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