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누구 엄마'가 아닌 내 이름을 만난 순간

by 메이옌

집 안은 언제나 소리의 감옥이었다.

아침을 알리는 밥솥의 치익거리는 증기 소리, 아이를 깨우는 나의 마른 목소리, 현관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 그리고 하루에도 수백 번씩 거실을 메우는 “엄마!”라는 외침.

그 소리들은 일상의 평화를 지탱하는 근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내 이름'은 점점 투명하게 지워지고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내 이름은 서류상의 기록이나 택배 상자 위에서나 겨우 마주하는 박제된 단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 엄마’ 혹은 ‘누구의 아내’로 정의했다. 그 이름표들은 훈장처럼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나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는 거대한 지우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조차 나를 ‘엄마’라는 역할로만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갈증을 느꼈다. 내 안의 응어리진 무언가를 터뜨릴 통로가 절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홀린 듯 동네 문화센터 귀퉁이에 있는 난타 연습실의 문을 두드렸다. 방음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온 그 묵직한 진동. 그건 소리라기보다 심장을 때리는 물리적인 타격이었다. 그 생소한 박동에 이끌려, 나는 생전 처음 무거운 난타 스틱을 손에 쥐었다.


서툰 박자가 비트가 되기까지

처음 쥔 난타 스틱은 생각보다 차갑고 딱딱했다.

가느다란 연필이나 부드러운 행주만 쥐던 내 손에, 굵직한 나무 막대기는 낯선 이물감 그 자체였다. 강사는 경쾌하게 기본 비트를 선보였지만, 나의 몸은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거렸다.


“자, 위로 치고, 아래로 치고, 스틱을 손가락 사이로 한 바퀴 돌려보세요!”


말은 쉬웠다. 하지만 내 몸은 십수 년간 ‘엄마’라는 고정된 박자에 길들여져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고, 정해진 시간에 불을 끄는 규칙적인 삶. 그 삶에 익숙해진 나에게 난타의 자유분방한 엇박자는 두려움이었다. 스틱을 돌리다 바닥으로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를 낼 때마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숙제를 안 해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엉망진창인 박자라도, 내 손으로 직접 이 거대한 북을 두드려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했다. 누구의 요구에 응답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먼저 시작하고 내가 마침표를 찍는 소리.


연습실의 거울 속에서 나는 보았다.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는 줄도 모른 채, 오직 박자에 몸을 맡기며 낯설게 빛나고 있는 한 여자를. 그 여자는 아이의 알림장을 체크하던 '누구의 엄마'가 아니었다. 잊혔던 '나'라는 본연의 모습이 기지개를 켜며 살아나고 있었다. 비로소 북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선명한 신호처럼 들렸다.


팸플릿 속에서 다시 만난 이름

몇 달 뒤, 꽤 큰 공연 홀의 대기실. 화려한 조명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무대 너머까지 전해졌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무대 의상을 갖춰 입은 내 모습이 거울 속에서 낯설게 빛났다.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했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긴장을 달래려 무심코 대기실 테이블 위에 놓인 공연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 여자의 사진이 있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북을 향해 스틱을 높이 치켜든 모습, 그리고 그 아래 선명하게 박힌 세 글자.


‘연주자 메이옌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누군가의 보호자도, 누구의 가족도 아닌, 오직 나의 이름 석 자가 당당한 주인공으로 적혀 있었다. 그 종이 한 장은 마치 나에게 잃어버린 보물지도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너 여기 있었구나.”

팸플릿 속의 나는 엄마라는 역할 뒤에 숨어 지내던 사람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독립된 존재로서의 나였다.


그 이름 석 자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종이의 질감을 타고 ‘나’라는 감각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던 그 찰나의 영원


“무대 입장해 주세요!”


스태프의 외침과 함께 어두운 무대 위로 올랐다. 암전 된 무대 위, 정적 속에서 수백 명의 관객이 내뿜는 숨결이 느껴졌다. 곧이어 강렬한 핀조명이 나를 비추었다. 떨림은 순식간에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더 이상 내일 아침 메뉴를 고민하거나 아이의 오답 노트를 떠올리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북 가죽과 내 양손에 쥔 스틱, 그리고 함께 호흡하는 동료들의 눈빛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스틱을 머리 위로 크게 휘두르며 첫 타를 내리꽂았다. 콰앙!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진동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집 안의 묵은 먼지 같던 고민들이 그 소리에 휘발되어 날아갔다. 위로, 아래로, 다시 옆으로. 연습실에서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반복했던 동작들이 본능처럼 흘러나왔다. 스틱을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가 다시 꽉 쥐었을 때의 그 쾌감. 관객들의 박수 소리와 나의 북소리가 하나가 되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올 때, 나는 비로소 완벽한 자유를 만끽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빛나는 법을 나는 무대 위에서 다시 배웠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동료 한 분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어 보였다.


“메이옌, 아까 스틱 돌리는 타이밍 진짜 예술이었어! 완전 주인공 같더라.”


그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건 대단한 명성이나 환호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 그리고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서 있다는 그 실감 하나면 충분했다.


다시 일상으로, 그러나 다른 리듬으로

공연은 끝났고, 나는 다시 앞치마를 두른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침이면 밥을 안치고, 아이의 옷가지를 챙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전의 일상과는 분명히 결이 다르다. 이제는 집 안의 단조로운 소음들 속에서도 내 안의 리듬을 찾아낼 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부름에 “응, 엄마 여기 있어”라고 따뜻하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덧붙인다.

‘그리고 여기, 나도 살아있어.’


내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공연 팸플릿은 지금도 내 서랍 가장 깊숙하고 소중한 곳에 간직되어 있다. 삶이 다시금 단조로워지고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가만히 그 종이를 꺼내 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음속의 북을 두드린다. 내 이름이 가장 선명한 비트가 되어, 다시금 나의 세상을 깨울 때까지.


나의 두 번째 성장은 그렇게, 잃어버린 내 이름을 두드리는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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