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서 나는 평생을 일해야 하는 운명이랬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면 학교를 지어서라도 가르치는 선생님 팔자라나.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생길만하면 어디선가 업무가 나타나거나, 그게 아니면 어느샌가 사부작사부작거리며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는 내가 우습게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나의 타고난 일복에도 한 줄기 빛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방학이다. 방학이 있는 직업이라니...!! 그것도 일 년에 두 번, 합치면 네 달 가까이 된다.
정말 꿀이지 않는가!! 내가 교수가 되어서 이렇게 방학을 오매불망 기다릴 줄은 전혀 몰랐다. 학생 때도 물론 방학이 좋긴 했지만, 방학 말쯤이면 슬슬 지겨워져 개강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오히려 교수가 되고 나니 이번 주는 몇 주차네, 방학까지 몇 번 수업이 남았네, 손꼽아 방학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학창 시절, 한 여자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방학 동안 하와이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책 번역 작업을 마치는 게 목표라고 하셨다. 아, 교수가 되어 방학 때 휴양지에서 작업이라니, 굉장히 멋들어지지 않은가.
3년 전 처음 학교에 부임해 맞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나는 저 교수님의 방학을 떠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장 해외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여유는 없어도 비슷하게나마 흉내 낼 수 있는 순간이 곧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대했던 나의 첫 방학은 예상을 뒤엎고 학기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대학원 설립 추진업무와 나의 개인전 준비가 겹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일복 많은 게 무슨 방학이냐. 일찌감치 포기하고 참 많이도 고생했던 나의 첫 방학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교수의 방학은 강의가 없어 관련 업무가 줄어들었을 뿐, 그 외 업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출근도 당연히 해야 하고, 휴가를 가는 것도 아주 자유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방학은 학생 때의 그것보다 훨씬 더 달콤하다. 일단 몸과 마음 상태가 너그러워진다. 수업 있는 날 새벽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는 예민한 나의 경우, 방학엔 일단 수업이 없으니 수면의 질이 향상된다. 학기 중엔 강의 때문에 말을 많이 해서 목이 아파 커피를 조심해야 하는데, 방학엔 커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논문 연구나 작업을 집중해서 할 수 있다. 연구나 작업이란 것이 언제든 시간이 생긴다고 해서 자리에 앉으면 뚝딱 생각나고 써지는 것이 아니라서 강의 준비와 지도 및 심사, 각종 학과일을 쳐내고 나면 온전히 연구에 집중할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방학에는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하는 시간이 일단 빠지니 시간 확보가 한결 수월해진다. 차분하고 집중력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대부분의 교수님들처럼 나도 방학 동안 전시 준비를 하거나 논문을 쓰는 것에 집중한다. 방학 동안 하지 않으면 학기 중에 쫓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압박받고 힘든 것은 나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달콤하지만 달콤하지만은 않은 방학을 보내왔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하지만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나에게 공부할 시간을 주니 감사해야 할 특권이다. 놀면 뭐하나.
아무튼 드디어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 끝이 났다. 총 네 개의 과목 성적평가 및 피드백 발송도 마쳤다. 오늘부터 진짜 나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