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현대 패션에 관한 대학원 수업을 맡았다. 비대면으로 수업하다 보니 학생들이 얼마나 이 수업을 흥미로워하는지 가늠이 되질 않아 무척 아쉽다. 나의 학생 시절을 돌아봤을 때 재미있는 수업의 기준은 교수님이 수업 내용과 관련된(또는 관련 없는) 잡담을 얼마나 재미있게 하느냐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다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수업 내용과 관련한 내 경험담들로 약간의 수다(?)를 덧붙여 최대한 지루해하지 않도록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 지난 경험들을 찾아 돌아보니 나는 패션 역사에서 꽤 중요한 사건들의 중심지에서 살아봤던 행운들을 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가 1920년대부터 패션의 중심지로 자리 잡긴 했지만 20세기 패션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변화를 보여준 곳은 단연코 영국 런던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한 후 1950년대부터 청년들이 그들만의 가치관과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면서 1960년대 런던은 유스 컬처(youth culture)가 내뿜는 철없다 못해 도발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된다.
학부 시절 나는 1960년대의 인형같이 귀여운 여성의 아이콘이었던 트위기(Twiggy)를 좋아했다. 짙게 메이크업한 동그랗고 큰 눈, 짧은 머리에 미니 드레스를 입은 깡마른 몸의 트위기는 16세의 나이에 영국의 젊은 여성들과 패션계를 뒤흔든 모델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약 40여 년 전의 이 모델에게 홀딱 반해 트위기의 고향이 영국 브라이튼(Brighton)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곳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곳에서 길을 걸어가다 이 패션의 역사적 아이콘을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다는 순진한 상상을 하곤 했다. 런던을 비롯해 영국 곳곳의 골목에 위치한 작은 가게들에서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1960년대의 스윙잉(swinging) 런던의 무드를 느꼈다. 그리고 이때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열렸던 비비안 웨스트우드 전시를 본 것이 아마도 언젠가는 이곳에 다시 패션 공부를 하러 오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
5년이 지나고 정말로 나는 런던으로 대학원을 오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모즈(Mods)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었던 비틀즈 앨범 타이틀이자 커버 사진의 배경이었던 아비 로드(Abbey road) 근처라는 이유만으로 그 동네에서 쭉 지냈다. 등하굣길에 타던 2층 버스는 아비 로드를 건너는 비틀즈 멤버들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을 언제나 친절하게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나 나는 다시 런던으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왔다. 이번에 지낼 동네를 선택하게 된 것은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였다. 걸어서 1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그 유명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첫 매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킹스로드 매장은 그녀의 첫 매장이며, ‘LET IT ROCK’, ‘SEX’라는 이름을 거쳐 1980년 ‘worlds end’로 변경하며 펑크를 베이스로 한 그녀의 패션 세계를 상위 문화로 발돋움시킨다. 나는 거의 매일을 그곳을 지나쳤는데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머릿속에 그려왔던 30대의 젊은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그곳에 여전히 있다고 상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지치고 막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면 길 건너에 ‘worlds end’라는 이름의 영업이 중단된 펍이 내려다 보였다. 세상의 끝이라.. 내 상황과 심정을 대변하는 찰떡같은 표현이라고 언제나 생각했다. 여기에서 혼자 뭐 하고 있는 건지, 미래도 불투명하고, 능력도 없는 내가 허황된 욕심만으로 멀리 와 나도 고생하고 부모님도 걱정시켜 드리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면 정말 세상의 끝에서 홀로 막막하게 남겨진 기분이 들었었다.
세상의 끝에서 그런 시간을 견뎌내었던 때가 있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땐 그 세상의 끝에 있었고,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을 마주할 직전의 시기였나 보다.
아무튼 요즘 강의를 하며 1970-80년대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마주하니 그때가 사무치게 생각나며 기분이 참 이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