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o sum operarius studens.
지난 학기부터 전공과 관련 없는 책들을 읽으면 복잡한 머리가 환기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또 동네 도서관을 맹렬히 들락날락하며 별생각 없이 책들을 골라 잡는다. 한동일 님이 쓰신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도 그중 하나인데, 읽어보니 가르치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 반성하게 하는 내용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 챕터에 나와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공부는 지난한 과정이니 불안감이나 방해 요소는 "쌩 까고" 그냥 진득이 하자는 게 주요 요지다. 맞아 맞아. 공감하며 긴장과 좌절로 버무려졌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지내며 공부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투고했던 논문이 어제 새벽 최종 accept 공지를 받았다. 펄쩍 뛰며 기뻐야 할 소식이긴 한데, 꽤 고생해서 그런지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2020년 안에 투고하자고 나와 약속하고선 강의 외 시간들을 꼬박 붙들고 썼었다. 이마에 염증이 가득 차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것을 항생제를 먹으며 바싹 말라가며 폐인처럼 버티며 썼는데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논문 심사결과를 보내와 7월 한 달을 꼬박 바쳐 수정을 마쳤다. 더운 줄도 모르고 방에 처박혀 홀린 듯이 몇 시간을 밥도 안 먹고 마무리했던 기억도, 멘털이 약해져 엉엉 운 일도, 걱정이 돼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웃음만 나온다.
나는 앞으로 적어도 25년은 이렇게 공부하며 살아야 할 거다. 그러니 저렇게 공부해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든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도 내려 마시고, 오후에 자전거를 타러 탄천에 나가기도 한다. 공부가 잘 안 된 날에도 자책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 쉬었다'하고 퉁치려고 한다. 점점 내가 나를 믿고 잘 대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나는 일상의 행복감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공부는 결국 나를 똑똑하게 만들어 준 것보다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