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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May 29. 2023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기간이 4개월도 넘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매일 무엇인가를 쓴다. 아침일기를 쓰고, 메일을 쓰고, 카톡을 쓰고, 책을 쓰고, 논문을 쓰고, 강의자료를 쓰고 있다. 이 중 책과 논문 쓰기는 해내야 할 임무로서의 쓰기다. 그래서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하고, 그리고... 좌절한다... 


희한하게 글쓰기가 막히면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읽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을 섭렵한 것도 아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확실히 읽었는데, <노르웨이의 숲>은 읽다가 우울해서 말았던가... 하지만 에세이는 좋다. 별 얘기 아닌데 별 얘기처럼 재밌다. 그 점이 짜증 나게 부럽다. 그래서 그의 <잡문집>을 읽어봐야겠다고 관심도서목록에 저장해 놓았다가 언젠가 산책길에 생각나 도서관에 들러 대출했다. 그리고 서문을 넘겨보다가 '굴튀김'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깨달았다.

 아, 나 이거 읽었었는데. 


도서관 대출목록을 조회해 보니 3년 전 딱 이맘때다. 그때 논문 심사결과를 받고 초조한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 빌렸었다. 그리곤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꽤 두껍기도 했고, 논문 수정이 꽤 지난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 읽었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 아래 쓴 짧은 글들의 모음집이라 왔다 갔다 하면서 읽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재미있는 것은 이번엔 뭔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할 만한 부분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땐 굴튀김에 관한 글을 그냥 읽고 넘겼는데 이번엔 깨달은 점이 있었다.


바로 어떤 주제의 글이던 결국 그 글은 나에 대한 자기소개서 같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 타당성과 객관성이 중요한 학술적 글쓰기에서도 말이다. 글의 주체인 연구자의 관점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논문은 나에 관해 쓴 글들이고, 그러니 계속 쓰다 보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글이 될 테다. 연구의 오리지널리티는 결국 연구자인 나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생각하니 글쓰기가 수월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편해졌달까. 그리고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 글들을 다 모아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단서이자 재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도 무언가를 쓰고 고치고 기꺼이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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