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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만난 낯선 맛의 기억

가족과 함께한 9일간의 음식 여행기

by 김종섭

5월, 봄의 그윽한 향기처럼 9일간의 여행에는 그윽한 추억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 터키는 2022년 6월부터 자국의 공식 명칭을 ‘튀르키예(Türkiye)’로 바꾸었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튀르키예’를 ‘터키’와는 전혀 다른 나라처럼 느꼈다. 단지 이름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도 그렇게 인상이 달랐던 것이다.


튀르키예는 말 그대로 케밥의 천국이었다. 마치 김밥이 속재료에 따라 참치김밥, 김치김밥 등으로 이름이 달라지듯, 케밥도 빵과 재료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이름과 맛으로 나뉘었다. 빵의 형태도 다양했는데, 딱딱한 바게트, 속이 빈 둥근 빵, 납작하고 부드러운 샌드위치용 빵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에게 김이 김밥의 기본이듯, 튀르키예에서 빵은 케밥의 기본이었다. 형태나 맛은 달라도 중심은 같다는 점에서 케밥과 김밥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여행 중 아들은 우리 부부를 카디쿄이(Kadıköy)로 안내했다. 세계에서 드물게 이스탄불이라는 도시 전체가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쳐 있다. 우리가 찾아간 카디쿄이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 대륙으로 튀르키예의 홍대’ 혹은 ‘MZ세대의 핫플’로 불리는 지역으로, 트렌디한 카페와 맛집이 가득했다. 특히 케밥은 물론 다양한 현지 음식과 해산물 시장이 있어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들은 곱창으로 만든 케밥을 파는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케밥에는 곱창으로 만들고 그 안에 소량의 내장도 간혹 함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곱창과 내장이 이라고 하니 먼저 떠오른 건 한국의 내장탕과 곱창구이었다. 내장탕은 해장국으로, 곱창구이는 술안주로 불리는 익숙한 음식이지만, 막상 식당에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방식의 요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 음식의 이름은 코코레치(Kokoreç)’였다.

▲ 전통 길거리 음식인 코코레치를 만드는 모습. 양이나 소의 곱창(창자부위)를 양념해 꼬치에 감아 구운 뒤, 잘게 썰어 빵에 넣는다.

코코레치는 튀르키예의 전통 길거리 음식으로, 어린양이나 소곱창(창자부위)을 양념에 재운 후 꼬치에 감아 구워내고, 그것을 잘게 썰어 빵에 넣어 먹는 방식이다. 우리가 찾은 식당에서는 대형 그릴에 곱창을 굽고 있었고, 그것을 바삭하게 구운 후 접시에 샌드위치처럼 담아냈다. 이것을 한국말로 곱창 케밥이라 불렀다. 한국에서도 곱창 볶음이나 구이는 익숙하지만, 이렇게 길거리 음식처럼 빵에 곱창을 넣어 먹는 방식은 처음이었다. 곱창이 아닌 내장은 탕이나 국물 요리에만 어울린다고 여겼던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코코레치는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사실 구운 음식은 대부분 그렇다. 생선구이든 고기든, 구우면 바삭함과 고소함이 더해진다. 한국인들이 구운 음식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도 코코레치는 간단한 식사이자 인기 있는 술안주라고 한다. 술안주의 조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듯하다. 다만 우리가 찾은 음식점에서는 술이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카페나 일부 식당에서 맥주 정도를 판매할 뿐, 한국처럼 음식과 술이 세트로 따라다니는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대목이기도 했다.


코코레치 식당 옆에는 고등어 케밥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일종의 고등어자반을 구워 빵에 넣어 먹는 방식으로, 재료는 단순했지만 맛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음식은 다양한 양념과 숙성을 거쳐 완성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의 음식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간식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재료 본연의 맛이 잘 살아 있었다.

▲강판 위에서 고등어를 구워 고등어 케밥을 만드는 과정

나는 케밥이란 음식이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빵에 특정 재료를 넣어 먹는 단순한 구성의 음식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감탄이 나올 만큼의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이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들은 케밥에 대해 거의 열광적이었다. 나는 웃으며 “넌 튀르키예 체질이다”라고 말하며 응원했다.


여행에서 무엇을 눈에 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기억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때로는 볼거리보다 음식이 여행의 분위기를 더 크게 좌우한다. 아들은 또 다른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게 해 주겠다며 홍합밥을 파는 식당을 찾아 나섰다. 이전 여행에서 맛본 기억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길거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위생 문제 때문인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다행히도 홍합밥을 파는 식당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홍합 껍데기에 양념된 밥 위에 삶은 홍합을 올린 튀르키예의 대표 길거리 음식, 홍합밥

홍합밥은 홍합 껍데기를 그릇 삼아 그 위에 다진 양념된 밥에 홍합을 얹은 일종의 주먹밥 형태였다. 특별한 맛보다는 색다른 조리 방식과 재료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삶은 홍합을 레몬과 함께 파는 노점상들도 보였다. 한국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합탕이 익숙하다. 추운 겨울, 뜨거운 국물로 몸을 녹이는 그런 음식. 그래서인지 길거리에서 레몬을 곁들여 삶은 홍합을 파는 모습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색다른 맛을 전하는 그들의 방식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들은 아마도 이런 이국적인 맛을 부모에게 소개하고, 자신이 먼저 경험했던 특별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특별했던 튀르키예의 음식들. 그 안에서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소중한 여행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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