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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액자 속에 살아난 시간

앨범 정리 중 마주한 가족의 흔적들을 더듬는다

by 김종섭

장롱 한 켠엔 수많은 앨범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아내의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의 앨범은 물론, 내 앨범, 그리고 출가한 두 아들의 성장기까지… 졸업앨범을 더하면, 장롱 속엔 이불이나 옷보다 사진이 더 많을 정도다.

아들들이 집에 올 때마다 “앨범 좀 가져가라”라고 권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마 그들에게 앨범은 그저 지나간 시간의 잔상일 뿐, 애틋한 기억은 아닐지도 모른다.

장롱 속 앨범은 1년 내내 빛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은 오랜만에 그 앨범들을 꺼내 정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리보다는 사진을 선별해 액자에 담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기까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어제처럼 선명한 장면들이 마음을 파고든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장농 안 박스엔, 앨범에 담지 못한 사진도 가득하다

사진은 단지 추억의 기록만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 열정적으로 살아낸 젊은 날들, 뜨겁게 사랑했던 그 순간들, 두 아들의 출생과 성장으로 이어진 가족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시절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버렸다. 다시 그런 시간이 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아쉬움과 미련이 더 커졌다.

사진을 정리하던 중, 또 다른 앨범에서 상장과 임명장도 발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왔던 날, 그 종이를 손에 들고 들어오면 온 가족이 환호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이야말로 사람 사는 맛이 있던 시간이었구나 싶었다.

잊고 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 액자에 담았다. 창고 깊숙이 묻혀 있던 액자 하나를 찾아냈고, 아이들이 외국 선수들 포스터를 넣어 두었던 액자도 동원했다. 이렇게 만든 액자들을 내 방 방문 정면 벽에 걸었다.

방에 들어서면 정면 벽에 위.아래로 나란히 걸린 두 개의 액자.

내 방은 거실처럼 개방되어 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공간이자 나의 서재이기도 한 이 방은, 평소 방문을 닫지 않는다. 닫힌 문은 마치 내가 갇혀 있는 느낌을 준다. 아마 겨울 내내 거실 벽난로의 온기를 받기 위해 문을 열어두었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일 것이다.

형제들과 함께 찍은 사진, 부모님과 나란히 선 사진 등 가족애가 짙게 배어 있는 사진들만 골라 액자에 담았다. 아들들이 집에 왔을 때, 무심코 방에 들어서며 이 사진들을 보고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그것이 내가 문을 열어두는 또 다른 이유다.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 관광보다 사진을 먼저 찍느라 바빴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억을 남겨야지.”
모두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곧 앨범 속에 묻혀 빛바랜 저장품이 되었다.

한때는 어느 가정이나 거실 벽에 가족사진을 모아놓은 액자가 걸려 있곤 했다.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함께한 그 사진은 집을 찾은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지금은 가족보다 개인의 시대다. 가족 간에도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흐름 속에서, 각자의 사진은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다. 잘 나온 사진 한두 장은 카카오톡 프로필 정도로 쓰일 뿐이다. 요즘은 자신의 사진 대신 반려견 사진이 프로필에 올라가 있는 경우도 많다. 지금 내 프로필도 그렇고, 아내와 며느리도 반려견 사진이 올라가 있다. 사람보다 동물, 가족보다 개별 존재를 먼저 생각하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이 되었고, 또 다른 추억의 방식이 되어간다.

20여 년 전쯤, ‘동그란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카페를 만들었다. 새로운 사진이 생길 때마다 계속 업로드했고, 그 공간은 추억의 창고이자 가족의 소통 창구가 되었다. 가끔 가족이 모이면 카페에 들어가 사진을 보며 웃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카페는 조용해졌고, 가족들의 흔적도 멈춰버렸다.

이번 5월 터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천 장이 넘는다. 그중 일부는 삭제하기 아까워 다시 가족 카페에 올려두었다. 사진은 찍을 때는 열정적이지만, 그 순간의 감정도 금세 식어 많은 사진이 삭제되곤 한다.

그 수많은 사진 중 치열한 선택을 거쳐 몇십 장만이 액자용으로 살아남았다.
손끝에서 간택된 사진들은 액자 속으로 들어갔고, 그 사진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화보가 아니다. 우리 가족과 아주 가끔 집을 찾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만의 화보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수십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그 시절은 참 빛났고, 여전히 내 마음을 유혹한다. 하지만 이제는 기억만이 허락된 지난날의 독주일 뿐이다.

그래도 기억이 있어 다행이다.

기억이 추억이 되어, 나를 다시 그 시절로 이끌어주는 행복감. 이것이,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매력 아닐까.


■오마이뉴스

■가족사진/김진호 노래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웃음꽃 피우길 ᆢ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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