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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이 될 청바지를 샀다

청춘의 흔적, 이제는 내 생애 마지막 청바지가 될지도 모른다

by 김종섭

외출할 때마다 가장 고민되는 것은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생각이다. 밝은 색 옷은 봄과 잘 어울리고 화사하지만,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니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청바지를 택한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청바지 대신 면바지나 구김이 적은 소재의 바지를 즐겨 입기 시작했다. 청바지를 입지 않게 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느 날 문득 다시 입어보려 했을 땐 청바지가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색감도 낯설고 느낌도 예전 같지 않아 결국 다시 벗어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다시 청바지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쇼핑몰에 갈 때마다 청바지 코너를 서성였지만, 낡아 보이는 워싱이나 지나치게 푸른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발길을 돌리곤 했다. 예전에는 찢어진 청바지, 짧은 단의 청바지도 거리낌 없이 입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청바지를 피하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전, 예전에 입던 찢어진 청바지를 다시 꺼내 입으려다 아내에게 “그건 이제 나이에 안 맞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나는 그 청바지를 바로 버렸고, 그날 이후 ‘나이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이번 5월 초순, 해외여행을 앞두고 문득 ‘이번 여행엔 청바지를 입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을 산책하다가 들른 한 옷가게에서 가격도 적당하고 색상도 깔끔한 청바지를 하나 발견했다. 피팅룸에서 입어보니 몸에 잘 맞았고, 피팅룸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에게 입은 옷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엄지 척을 하며 “색깔도 좋고 잘 어울린다”라고 했다.


가격 대비 만족스럽고, 몸에 핏(fit)도 잘 맞았다. 십여 년 만에 청바지를 새로 산 셈이다. 물론 집에도 몇 벌의 청바지가 있긴 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고 사용감도 많아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입지 않게 된 청바지들은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새로 산 이 청바지 하나만 남겨 두기로 했다.


기장을 재고, 아내는 오랜만에 재봉틀을 꺼내 단을 내 몸에 맞게 손질해 주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 이 청바지가 당신 생애 마지막 청바지가 될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60대인 나이에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더 나이가 들면 청바지가 불편해질 것이고, 또 나이에 비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나도, 아내도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한때’라는 것이 있다. 어떤 옷을 소화할 수 있는 나이도 있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할머니라도 미니스커트를 입기는 어렵듯, 옷차림에도 분명 나이의 경계는 존재한다.

아내는 청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으며 말했다.


“당신 뒷모습이나 앞모습은 완전 총각 같아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얼굴과 배 부분을 제외하고 말이지.’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게 웃었을 텐데, 지금은 괜히 민망하고 머쓱해진다. 총각 같다는 말이 이제는 조금은 과장처럼 느껴진 나이가 되었다.


나이도 바뀌고, 사회적 위치도 변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특히 나이라는 것은 변화라기보다는 제한을 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시니어 혜택’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역에서 점점 내려놓고 물러나는 것이 많아진다.


지금 이 청바지가 내 생애 마지막 청바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애정 있게 입고 싶다.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오래 입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청바지를 입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 마음속 청춘을 다시 꺼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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