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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마덜스데이, 우리 가족의 색을 칠했다

가정의 달 5월, 그림 도구 상자에 담긴 사랑과 마음

by 김종섭

현관문이 열리자 강아지가 먼저 총총 달려 들어왔다.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집 안을 한 바퀴 돌더니, 익숙한 소파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 뒤로 작은아들과 며느리가 들어섰다. 며느리 손에는 사과박스 크기의 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에 먼저 눈이 갔다. 과일 상자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아내에게 상자를 내밀며 선물이라 한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캔버스와 나무 이젤, 물감, 팔레트, 팔레트 나이프, 페인팅 나이프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가 모두 들어 있는 종합세트였다.

뜻밖이었다. 사실, 캐나다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마더스데이, 6월 셋째 주 일요일이 파더스데이다. 한국의 어버이날이 5월 8일로 날짜를 지정한 것과 달리, 캐나다는 요일로 지정되어 있다. 일요일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가족들이 부담 없이 하루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이 점이 참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예전에 조선일보에 이 내용으로 기고문을 쓴 적도 있다. 날짜로 정해진 기념일은 평일과 겹칠 경우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반면, 일요일로 정해진 캐나다의 방식은 온전히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림 도구 세트를 받아 들고 아내는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눈치였다. 마더스데이 때 우리는 튀르키예 여행 중이었고, 출국할 때 작은아들 부부에게 용돈도 받았기에 더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에게 늦은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던 아내는 한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그림을 그렸고, 가끔 가족 단체방에 완성한 그림을 올리곤 했다.

선물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받는 이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주는 이의 판단으로 준비되는 선물이 있고, 반대로 받는 이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해 준비된 선물도 있다. 이번 선물은 분명 후자였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기억해 준 마음, 아마 그 모습을 눈여겨본 아들 내외가 마음을 담아 이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부모는 늘 자식들이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믿었는데, 자식들은 오히려 부모의 작은 관심사까지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식들에게도, 부모가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오래도록 의미 있게 기억되는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림 도구도 종합세트로 판매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참 실용적으로 잘 나와 있었다. 상자를 열며 아내는 연신 감탄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때로는 이런 선물이 그 어떤 말보다도 깊은 감동을 준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불리며, 챙겨야 할 날들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다 보니 축하와 감사의 의미는 커지지만,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모두가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달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버거운 한 달일 수도 있다. 기념일이라는 것이 본래 의미를 가지려면, 형식보다 진심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은 날들이 몰려 있는 것도 제도적으로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선물은 마음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준비한 정성과, 그것을 전하려는 그 마음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이번에 받은 그림 세트처럼 말이다. 받는 사람의 의사를 헤아린 선물은 결국 마음의 언어가 되어 오래 남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조금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게 가정의 달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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