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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코스트코에서 만난 냉동 김밥 이민자의 추억

외국 마트에서 마주한 K-김밥, 그 안의 자부심과 기억들

by 김종섭

이민 생활이란, 어느 날엔 고국과 고향을 한꺼번에 그리워하고, 또 어느 날엔 나도 모르게 한국의 정감 있는 음식 중 하나를 떠올리며 마음이 유난히 쏠리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그리움 속에서 문득 마주친 한국 식재료나 간식 하나는, 말없이 위로가 되어주곤 했다. 그런 우리에게 코스트코는 단순한 대형 마트를 넘어선다. 한국의 어떤 제품이 이 세계적인 유통망에 올라왔다는 사실은, 마치 작은 승리처럼 느껴진다. 세계 무대의 등용문을 통과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드나드는 이 공간에서 한국 제품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참으로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처음 김치를 코스트코 넓은 매장 진열대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가만히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움과 울컥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후 불고기, 잡채, 자장면, 심지어 호떡 믹스까지 코스트코 진열대에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어느새 ‘K-푸드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어제, 평소처럼 장을 보던 중 냉동 진열대에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냉동 김밥’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한 줄씩 포장된 김밥은 코스트코가 아닌 다른 매장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어제 본 김밥은 포장부터 크기까지 분위기가 일단 달랐다. 뭔가 포장 안에는 속이 꽉 찬 듯 묵직해 보였다. 김밥은 늘 속이 궁금한 음식이다. 어떤 재료가, 어떤 마음으로 들어갔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그래서 김밥 한 줄을 통해 맛의 이야기를 전하는 음식이다.


냉동고 앞에 한참을 멈춰 선 나는 이방인이 아닌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한국 마트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김밥은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반가우면서도 신기한 조합이다. 냉장 진열대 문을 열고 손을 뻗어 김밥을 들어보니, 묵직한 무게에 다시 한번 놀라고, 포장지에 적힌 설명에 또 한 번 놀랐다. “Seaweed Rice Roll with Fried Tofu & Vegetable.” 두부튀김과 채소로 속을 채운 담백하고 건강한 스타일. 우리가 익숙하게 먹던 우엉, 계란, 시금치, 단무지가 정석처럼 들어간 김밥과는 조금 달랐지만, 오히려 개량한복처럼 한국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느낌이 들었다.

포장지에는 “KEEP FROZEN / READY IN ABOUT 3 MINUTES”라고 적혀 있었다. 전자레인지에 3분이면 완성된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조건이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굳이 냉동 김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김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특혜를 지닌 셈이다.


사실 며칠 전에도 집에 남아 있던 잡채로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남은 음식으로 새로운 한 끼를 만든다는 기분 좋은 여유 속에, 김밥을 만들어 먹어보니 그 맛이 의외로 별미였다. 참치김밥, 불고기김밥, 치즈김밥에 이어 잡채김밥까지. 김밥은 무한 확장이 가능한, 창조적인 음식이 분명하다.


어제는 식탁에 시금치 무침이 올라왔는데, 나는 문득 시금치를 보는 순간 ‘내일은 이 시금치로 김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김밥을 만드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그 속에 오래된 추억이 함께 말려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김밥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에게도 결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풍날, 학교 체육대회 날,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김밥은 언제나 최고의 맛, 최고의 도시락이었다. 돗자리를 펴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나무젓가락을 어설프게 쪼개어 나눠 먹던 그 순간들. 하나하나의 김밥에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담겨 있었다. 재료는 단순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재료 이상의 것을 담아내는 음식이 바로 김밥이었다.


지금도 집사람과 함께 김밥을 만들어 먹는 날이면, 우리는 음식하나로 옛 시절 이야기로 돌어가곤 했다. 김밥은 그렇게 ‘과거를 오늘에 불러오는 음식’이자, 오늘을 더 정겹게 만들어주는 음식이 되어주었다.


코스트코에서 만난 냉동 김밥을 보며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김밥 하나에 뭘 그리 감상적이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곳 캐나다 해외에서 만나는 김밥은 단순한 간편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상징이며, 이민자의 애환과 자부심이 한 줄기 김밥 속에 오롯이 녹아 가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김밥이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김밥을 닮은 스시롤은 이미 캐나다 사회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김밥은 그것과는 또 다른,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서정적인 감성을 지닌 음식이다. 간편하고 건강한 이미지, 다채로운 조합은 글로벌 시대에도 매력적인 조건이 된다. 어쩌면 김밥은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손흥민처럼 K-푸드의 대표 주자가 되어, 맛으로 한국을 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코스트코에서 김밥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국 김밥이 이렇게 캐나다에 자리 잡은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낯설지만 익숙한 냉동 김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한국을 만났다. 그리고 김밥 한 줄 속에 담긴 수많은 기억들과 자부심을, 조용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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