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 변경 제안, 자식 세대의 편의, 그리고 나의 작은 결심
아내는 몇 년 전부터 내 생일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여보, 이제 생일을 양력으로 바꾸면 어때요?”
음력 8월 10일이 내 생일이다. 나는 늘 “추석 닷새 전”이라며 기억하기 쉽다고 생일 날짜 변경을 반대해 왔다.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이기 때문에 매년 날짜를 다시 계산하지 않아도 추석 5일 전이라 금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요즘 세대, 특히 자식들과 새로 맞이한 며느리들은 음력에 익숙하지 않으니, 생일을 양력으로 통일하면 가족 모두가 기억하기 편해질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세대는 음력과 양력을 모두 안고 살아왔다. 부모님은 음력을 기준으로 명절과 제사, 그리고 생일을 챙겼지만, 모든 사회생활은 온전히 양력 달력에 맞춰 흘러갔다. 그렇다 보니 음력 생일은 추석 전이라 할지라도 해마다 달력을 찾아야 하고, 자식 세대에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물론 나만의 일은 아니다. 형제, 부모님도 호적상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다르다. 옛날에는 출생 신고가 늦어 실제 태어난 날이 아닌 신고일이 생일이 된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호적상 생일은 이듬해 1월 25일로 되어 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호적에 적힌 날짜로 바꾸는 건 어때요?”
아내는 자신의 호적 생일이 실제 생일과 일치했기에, 나 역시 호적에 적힌 날짜를 생일로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래서 호적 생일을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도 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 해를 건너뛰고 한겨울인 1월 25일은 내가 태어난 초가을과 겨울은 계절감이 전혀 맞지 않았다. 아내의 제안은 현실적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생일 느낌과 계절감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는 나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직접 내 생일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변환해 보았다. 태어난 해의 음력 8월 10일은 양력으로 9월 27일이었다. 다행히 계절도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올해부터 9월 27일을 내 새로운 생일로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생일 날짜를 정한 뒤, 마침 큰아들이 한국에서 보이스톡을 걸어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생일 날짜 변경 소식을 전했고, 아내는 작은아들에게도 변경 사실을 그 자리에서 즉시 알려주었다.
올해는 9월 27일이 토요일이었다. 그날은 아내가 출근을 해야 해서, 우리는 하루 앞당겨 금요일 저녁에 생일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금요일이 공교롭게도 어머니 기일과 겹치게 되었다.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고 간단히 종교의식만 드리는 우리지만, 기일과 겹쳐 생일을 챙긴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손자들이 할머니를 기억하면서 같이 아빠의 생일을 맞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아내의 말뜻도 의미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큰아들이 이번 24일에 한국에서 밴쿠버로 들어와 추석을 함께 보내겠다고 하니, 올해 내 생일은 더욱 풍성하고 특별한 날이 될 것 같다.
생일은 단순한 개인적 기념일이기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만들어가고, 기억하고, 축하해 주는 날이다. 아직까지 생일은 오직 음력으로 정해진 날짜에 지내왔지만, 이번에는 가족과 어머니 기일이라는 맥락 속에서 또 다른 풍경과 의미가 생겼다.
솔직히 생일 날짜 변경은 했지만 아직은 9월 27일이라는 새로운 생일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양력 생일이 훨씬 더 빨리 익숙할 것이다. 경조사 날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음력처럼 매년 달력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진다. 음력 생일이 주는 옛 정취와 양력 생일이 주는 편리함이 이렇게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생일은 결국 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가족과 함께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다.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꾼 내 생일은 세대의 차이를 잇는 작은 다리이자, 가족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