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길 주차장에서 포착한,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움직이는 트리
매년 이맘때면 거리는 화려한 불빛과 캐럴로 채워지고, 크리스마스는 자연스레 생활 곳곳의 풍경이 된다. 모처럼 비가 멈춘 뒤, 회색빛이 드리운 밴쿠버의 흐린 오후. 지인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던 길, 극장가 건물 앞 주차장에 세워진 한 대의 검은색 지프가 내 걸음을 붙잡았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트리는 보통 집 안 거실이나 교회, 혹은 카페·마켓·백화점 같은 실내 공간에 고정해 두는 장식이다. 하지만 그날 내 눈앞에 선 것은 고정된 트리가 아니라, 그 통념을 산뜻하게 깨는 ‘이동식 크리스마스트리’였다.
그 지프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성탄 트리’였다. 차량 전체가 하나의 장식물처럼 꾸며져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 시선을 끌어당기는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지나가는 이들에게 작은 흥분과 기쁨을 선물하는 ‘달리는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이었다.
차 지붕 위는 마치 선물 창고 같았다. 푸른 솔가지 장식 위에 빨간색·금색 포장지의 선물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작은 산타 모형과 미니 썰매까지 배치되어 있어 마치 산타클로스가 방금 내려놓고 간 흔적처럼 느껴졌다.
창문과 차체 곳곳에는 눈송이 스티커, 지팡이 사탕 모양의 무늬가 붙어 있었고, 검은색 차체는 그 화려함을 오히려 더 또렷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특히 뒷바퀴 예비 타이어를 감싸고 있는 솔가지 화환 장식은 이 차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했다. 뒷유리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아기 예수 탄생 장면은 성탄절의 본래 의미까지 은근히 환기해 주었다.
너무 신기한 풍경이라 앞, 뒤, 옆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핸드폰 카메라로 여러 각도를 담아냈다. 밴쿠버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런 크리스마스 차량 장식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차의 주인이 문득 궁금해졌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딘가 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저토록 정성을 들여 차를 꾸민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옷차림도 남다를까? 연령대는?’ 이런 추측이 꼬리를 물었지만, 주인을 기다리고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크리스마스이지만, 그 반복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표현한다. 이 ‘이동식 성탄 트리’ 지프처럼 말이다. 차 한 대가 온 거리를 따뜻하게 밝히고, 우연히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를 선물하는 장면. 그 풍경은 분명 올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삭막해지기 쉬운 일상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차에 직접 트리를 꾸며낸 정성과 유쾌한 감성은 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처럼 전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동네의 어느 주차장 한편에서도, 또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기분 좋은 일탈’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 목격한 이 이동식 성탄 트리가 누구에게든 소소한 행복으로 남기를, 그리고 올해도 뜻밖의 기쁨이 우리 주변에 조용히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