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개월 만에 잡힌 MRI 검사, 캐나다에선 왜 행운일까

기다림이 일상이 된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서 뜻밖에 앞당겨진 검사 일정

by 김종섭

몇 달 전, 아내는 패밀리 닥터를 통해 MRI 검사 요청을 했고, 어렵게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아내가 검사 일정을 묻자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빠르면 1년, 길면 1년 반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냥 잊고 지내다 보면 연락이 올 것이라는 말로 이해하기로 했다.

캐나다 의료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픔’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전형적인 느린 진료는 실망을 넘어 분노조차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이 나라 의료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풍경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검사나 시술을 기다리다 병을 키운다고 말하지만, 그 말조차 오래된 푸념처럼 들린다.

그런데 며칠 전, 종합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12월 18일 오전 6시까지 내원하라는 통보였다. MRI 신청 후 불과 5개월 만이었다.

이걸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캐나다 의료 시스템 안에서는 ‘기적에 가까운 행운의 일정’ 임은 분명했다.

아내는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한 지 오래됐다. 통증은 큰아들을 출산한 이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몇 달 전에는 고관절까지 통증이 번지면서, 결국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퇴사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아플 때마다 패밀리 닥터를 찾아도 돌아오는 처방은 늘 비슷했다. 진통제, 그리고 꾸준한 재활운동과 유산소 운동 권고 사항이었다. CT 촬영과 혈액검사도 해보았고, 한의원을 찾아 침 치료를 받거나 물리치료(재활치료) 클리닉에서 치료도 받아봤지만, 통증은 잠시 누그러질 뿐 뚜렷한 호전은 없었다.

그래서 몇 달 전, 아내는 패밀리 닥터에게 MRI 검사를 요청했고, 그 신청이 이제야 현실이 된 것이다.

사실 캐나다의 의료는 전반적으로 무료다. 특히 MRI처럼 고가의 특수 장비를 사용하는 검사는 한국에서도 비용 부담이 큰 편이다. 캐나다 역시 상황은 비슷해 쉽게 검사 승인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정이 잡혀 더더욱 뜻밖이었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 병원은 거의 침묵에 가까웠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로비로 올라가자, 복도 상단 하늘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Medical Imaging(의료 영상 센터)’X-Ray, CT, 초음파, MRI 및 특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안내와 함께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표시돼 있었다.

영상 센터 출입문은 이른 아침 부분 검사 시간이라 자동문이 통제돼 있었고, 직원이 수동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센터 안에는 직원 한 명만 있었고, 대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간단한 신원 확인과 설문지를 작성하는 사이, MRI 팀 간호사가 아내를 직접 마중 나와 검사실로 안내했다.

약 30분 후, 아내는 검사실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긴장됐다고 했다. 커다란 원통형 기계 속으로 몸이 들어가고, 미세한 움직임조차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고 한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차가움이었다.
안이 너무 추워 온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였다고 했다. 귓가에서는 ‘쿵쿵’ 울리는 기계 소리가 계속 들렸고, 서늘한 공기 속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패밀리 닥터에게 전달된다. 검사 대기 시간과 달리 결과 통보는 비교적 빠르다. 아마 1주일 이내에는 결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나올 즈음, 영상 센터에는 어느새 대기 환자들이 제법 늘어 있었다.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특히 여성 환자들이 많아 보였다.

센터를 나서며 별도로 들를 곳은 없었다. 계산 과정도 없다. 의료비는 전액 무료다. 다만 처방전이 나오면 약국에서 약값만 부담한다.

한국 병원처럼 진료 환자에게 주차비 할인이나 무료 시간을 제공하는 제도도 없다. 병원비 대신 주차비를 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캐나다 의료는 분명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검사와 시술이 무료라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럼에도 빠른 치료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한국 교민들이 결국 사비를 들여 한국으로 돌아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캐나다는 복지국가이지만, 의료만큼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느림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은행을 가도, 쇼핑몰 계산대에 서도, 정부 기관을 찾아도 급한 기색은 없다. 이 느린 행정 시스템은 캐나다에서는 하나의 평범한 미덕처럼 받아들여진다.

오늘은 아내와 병원을 다녀오며 크지는 않지만, 생각지도 않게 적절한 당첨금에 당첨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이라면 아무 의미도 부여되지 않을 MRI 검사 일정이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날, 특별한 병원 외출이 되었다.


https://omn.kr/2gfup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