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방문은 실례라기에... 문 앞에서 보양식만 건네고 돌아왔다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은 온화하지만, 비와 함께 찾아오는 으슬으슬한 한기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한다. 요즘은 기후 변화 탓인지 주변에 감기 환자가 부쩍 늘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일찍이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은 덕분에 무사히 겨울을 지나고 있었는데, 오늘 아들과 통화하다 며느리가 독감으로 몸져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픈 자식 소식에 마음이 먼저 바빠졌다.
아내와 함께 아픈 며느리를 위해 무엇을 해다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집을 나섰다. 아내는 한인 마트에서 ‘냉동 포장되어 있는 간편식 삼계탕’을 사다 주자고 하였다. 보통 감기에 걸려 입맛이 없을 때에는 제일 먼저 죽을 생각 하지만, 이미 아들이 아침 식사로 챙겨주었다고 하기에 든든하게 기력을 보충할 다른 보양식을 떠올린 것이다.
집에서 5분 거리인 한인 마트를 찾았다. 감기에는 우선 비타민 C가 들어 있는 과일이 좋겠다는 생각에 싱싱한 오렌지 한 망을 카트에 담았다. 이어 냉동 코너에서 꽁꽁 얼어있는 삼계탕 두 봉지를 골라 담았다.
사실 우리 부부도 입맛이 없거나 직접 삼계탕을 만들기 번거로울 때 가끔 마트에서 이 삼계탕을 사다 먹곤 한다. 간편식이라고는 하지만 식당이나 집에서 고아낸 것처럼 뽀얀 국물 맛이 생각보다 깊고 훌륭해 충분히 한 끼 먹을 만한 음식이다. 이 삼계탕이 며느리의 감기에 도움이 되는 든든한 보양식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차 뒷좌석에 오렌지와 삼계탕, 그리고 아내가 미리 만들어둔 유자차 병을 싣고 아들 집으로 향했다.
차로 달리는 30분 남짓, 차창 밖으로는 여전히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밴쿠버에는 여러 인종이 살아가지만, 우리 한국인에게 삼계탕은 그 어떤 화려한 음식보다 귀한 ‘소울 푸드’이다. 따끈한 국물 요리가 많은 한국 음식의 특징은 국물 한 그릇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 집 앞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아들과 며느리가 현관으로 나왔다. 준비해 간 음식을 건네주고, 추운 바깥에 오래 서 있는 것이 감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차를 돌렸다. 사실 부모 형제간이라도 갑작스러운 방문은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례가 된다. 미리 전화를 했지만, 아픈 며느리 입장에서는 집 정리도 해야 하고 자신의 초췌한 모습도 신경 쓰여 시부모의 방문이 마냥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물건만 집 앞에서 전해주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던 것이다.
요즘은 시부모의 사소한 관심조차 부담스러울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문 앞에서 마음만 전하고 돌아오는 것이 우리가 며느리를 좀 더 편하게 해주는 우리만의 사랑법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것이 성인이 된 자식 간에 지켜야 할 적절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며칠 전 연락해 온 한국의 큰며느리가 생각나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큰며느리도 몸살감기에 걸렸다고 했는데, 그때는 멀리 있다는 이유로 따뜻한 마음뿐이 전할 수 없었다.
오늘 작은며느리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상대적으로 멀리 있는 큰며느리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마저 멀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몸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만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은며느리가 가까이 살기에 손길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누구를 더 예뻐해서가 결코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사실 가끔은 아득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큰며느리든 작은며느리든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똑같은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아픈 때가 가장 서럽다고들 한다. 그 서러움은 결국 ‘나를 살펴주는 마음’을 나누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것이다. 비록 마트에서 산 간편식 삼계탕이긴 하지만, 자식 걱정하는 시부모의 사랑이 듬뿍 담긴 보양식이라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한다. 시부모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며느리의 감기가 감쪽같이 달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