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받은 175달러의 환급금, 뜻밖에 찾아온 일요일의 선물이었다
새해 초부터 주방 싱크대 수도꼭지가 말썽을 부렸다. 몇 달 전부터 좌우 회전이 뻑뻑하더니 결국 탈이 난 모양이다. 며칠 전 직접 수리를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했다. 결국 아내는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집에 온 아들에게 긴급 수리를 다시 요청했다. 아들은 싱크대 하부장 안으로 얼굴을 깊게 묻고 한참을 점검하더니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엄마, 이건 고쳐서 될 게 아니에요. 수도꼭지 뭉치를 통째로 갈아야겠는데요."
부품값을 조회해 보니 150불에서 200불 사이였다. 새해 벽두부터 예상치 못한 지출 소식에 왠지 나가지 않아도 될 생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부속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있는데, 아내가 때마침 휴대폰을 내밀었다. 은행 앱 알림 창에 캐나다 국세청(CRA) 명목으로 175달러가 입금되어 있었다.
입금된 내역을 보는 순간, 일종의 ‘정부표 세뱃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며칠 전 가구의 물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GST(물품서비스 세) 환급금이 1월 5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된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관공서도 쉬는 일요일인 4일에 하루 일찍 도착한 것이다. 분기별로 지급되는 환급금이라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들어오니 기분이 묘했다. 신기하게도 싱크대 부품값과 얼추 맞춘 듯 일치했다.
며느리 세뱃돈 고민과 '낀 세대'의 자화상
사실 우리 가족은 연말 아내의 생일 때 모여 식사를 나눈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새해 첫날은 각자 스케줄에 맞춰 보내기로 하고, 일요일인 4일, 오늘 뒤늦게 모여 떡국을 먹기로 한 것이다. 올해는 며느리까지 식구가 늘어 세뱃돈을 얼마를 주어야 할지 어제부터 아내와 고민을 했다. 이제 어엿한 가장이 된 아들이니 예전처럼 적당한 용돈이 아니라 아들 부부 외식 한 끼 할 수 있는 정도는 챙겨주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아들 내외는 점심을 먹고 소파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현관을 나섰다. 아들은 "구정에 정식으로 세배하러 올게요"라는 인사를 남겼다. 아들은 세배를 드리는 것이 신정이 아닌, 옛날 한국에서 보냈던 구정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설날을 떠올렸다. 세뱃돈 받을 생각에 설레며 기다렸던 설날이 생각났다.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고 곧장 할머니 댁을 찾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께 또다시 세뱃돈을 드리셨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탓에 '출가 후에는 당연히 자식이 부모에게 세뱃돈을 드리는 것'이 도리라 믿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보니, 나는 여전히 아들에게 세뱃돈을 ‘줘야 하는’ 자리에 서 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을 공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훗날 자식들에게 세뱃돈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의문마저 든다. 동시에 자식의 자립을 끝까지 돕기 위해 기꺼이 세뱃돈을 챙겨줘야 하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날 ‘낀 세대’가 마주한 쓸쓸한 자화상이다. 노후는 불안정하고 위아래로 챙겨야 할 곳은 여전히 많으니, 가끔은 우리가 참 손해 보는 세상을 사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 한구석에 씁쓸함이 스치기도 한다.
공돈이 전해준 작은 위로
그래서일까. 오늘 정부에서 보내온 175달러는 단순한 행정 절차라기보다, 국가가 건네는 세뱃돈 혹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가는 돈만 있고 들어올 곳은 마땅치 않은 낀 세대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느낌이랄까. 입금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체감상으로는 영락없는 '공돈'이자 '선물'이었다.
정부가 보내준 이 기분 좋은 용돈 덕분에 새해 첫 지출인 싱크대 수리비가 더 이상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낀 세대로 사느라 늘 긴장하며 팍팍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고쳐질 싱크대 물줄기처럼 개운하게 풀리는 일요일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