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빚은 만두, 모양보다 깊어진 부부의 시간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새해, 첫날은 조용히 보냈다. 정작 떡국 한 그릇 챙겨 먹지 못한 채 이튿날이 밝았다. 하루 늦은 새해 신고식이지만, 만두소에 들어갈 고기와 당면, 두부, 그리고 삶은 숙주와 배추를 정성껏 썰어 준비했다. 아내는 배추와 숙주, 두부를 삼베자루에 넣고 물기 없이 짜달라고 부탁했다. 낯선 타국 땅에서 만난 삼베자루의 출처가 궁금해 물어보니, 아내는 예전 한국의 어느 노점상에서 사 온 것이라 답했다. 만두 하나를 만드는 데도 이토록 섬세한 손길과 세월이 묻은 도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준비된 만두소 재료들이 한데 섞여 오묘한 빛깔을 띠며 식탁 위에 올랐다.
식탁 위 만두 재료들을 보니 한국 음식의 참맛은 역시 여러 재료가 한데 어우러지는 맛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만두 역시 비빔밥이나 김밥처럼 서로 다른 맛을 가진 재료들이 섞여 깊은 풍미를 만들어낸다. 우리네 삶도 이 만두 속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선남선녀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듯, 다양한 재료들이 만두피 안에서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맛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 아닐까 싶다.
거실 식탁에 아내와 마주 앉아 만두피에 속재료를 꾹꾹 눌러 만두를 빚었다. 만두를 빚다 보니 문득 추석날 송편을 빚던 기억이 났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 옛말에, 젊은 날에는 오직 예쁜 모양을 만드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여전히 '모양'에 집착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나 보다. 아내가 빚은 만두는 속재료가 듬뿍 들어가 겉모습부터 넉넉하고 풍성한데, 내가 빚은 것은 모양에만 치중하느라 어딘지 모르게 속이 빈 것처럼 인색해 보였다. 이제는 송편이든 만두든 예쁜 모양을 내겠다는 욕심 대신, 지나온 세월만큼 깊어진 서로의 마음을 둥글게 감싸 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게 채워진 아내의 만두를 보면서 눈에 보이는 모양보다 그 안에 담긴 실속 있는 속재료의 정직함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부부가 함께 채워갈 앞으로의 시간일 것이다.
해외에 살다 보면 고국의 미풍양속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설날 아침 온 가족이 모여 북적이며 떡국을 먹는 풍경 대신, 캐나다의 새해는 평범한 휴일처럼 고요하게 흘러간다. 이런 환경 탓에 한국적인 정서가 무뎌지는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수록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이라는 공식이 손해처럼 느껴져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한 살이라도 더 빨리 먹고 싶어 경쟁하듯 그릇을 비우던 젊은 날의 순수함이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젊음은 영원할 줄 알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믿었지만, 이제는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숫자의 무게를 만두를 빚는 손끝에서 조용히 되새겨 본다.
팔팔 끓는 육수 속에서 만두가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고, 뽀얀 떡국 떡이 보글보글 춤을 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떡국을 식탁 위에서 마주하니, 비로소 새해 신고를 마친 기분이다.
비록 하루 늦은 의식이었지만, 아내와 마주 앉아 조용히 만두를 빚던 시간 덕분에 올해의 시작은 유독 차분하고 여유롭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만두 속재료처럼 내 안의 다양한 경험들을 잘 버무려가는 과정이 아닐까. 서로 다른 재료들이 만나 조화로운 맛을 내듯, 우리 인생의 고비마다 겪은 일들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 것이라 믿는다.
낯선 타국 땅이지만 정성껏 빚은 만두 하나에 담긴 온기 덕분에, 올해도 넉넉하게 살아낼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