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손으로 써 내려간 동시와 디지털 시대에 잊고 지낸 손글씨의 온기
신년이 되자 작은 아들이 밥을 먹다 말고 불쑥 색다른 선언을 했다. 올해부터는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아니라 직접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겠다는 것이다. 손글씨로 직접 정성스럽게 써가면서 하루를 반성해야 다음 날의 더 활력 있는 일을 되찾을 것 같다는 아들의 말이다.
사실 나 또한 예전에는 짧게라도 하루 일과를 수첩에 옮기곤 했었는데, 어느샌가 핸드폰 일정표 속에 하루 일정을 적어 넣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다시 연간 날짜가 수록된 종이 수첩을 사서 간단한 하루 일과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현재 노트를 사용 중에 있다. 아들의 말이 내심 더 반가웠던 이유다.
큰아들이 결혼도 했고 해서 집에 있는 짐을 옮겨가야 할 것 같아 몇 달 전 집에 있는 아들의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다가, 깊숙한 곳에 보관해 두었던 일기장 더미가 때마침 생각났다. 그 일기장 뭉치를 가지고 거실 소파에 내려놓고 하나하나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기록이 담긴 일기장이 무려 15권이나 남아 있었다. 그 이후에는 전학을 가거나 고학년이 되면서 일기 쓰기를 멈춘 듯하다. 그 속에는 남산타워 입장권부터 환경 일기장까지 아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옛 추억을 넘겨보던 중, 문득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우측에는 '부엉이'라는 제목의 앙증맞은 자작시가, 좌측에는 초등학생이 읽기엔 꽤 어려워 보이는 《남북관계 추측보도 너무 많아》라는 신문 칼럼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면을 채운 아들의 자작시
제목:부엉이
부엉이
눈 속엔
손전등이
두 개
낮에
껐다가
밤에만
켜는
달밤엔
파란불
별밤엔
노란불
이토록 맑은 시 옆에 붙은 칼럼 밑 소감은 더욱 당찼다. "나는 북한이 쳐들어올 것 같다. 친하다고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짧은 글이 덧붙여져 있었다. 26년 전,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신문을 오려 붙이면서 우리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방심은 금물"이라면서 꾹꾹 눌러쓴 짧은 글도 보였다. 지금 이 일기장 내용을 읽고 시와 함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할 정도였던 초등학생 아들의 근황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우선 궁금할지도 모른다. 강하게 언급한 아이의 모습에서, 지금도 그때 그 시절 아이가 가졌던 투철한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적힌 시구는 또 얼마나 맑은지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역시 아이들의 생각과 눈은 맑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사실 몇 달 전 아내와 산책길에 부엉이를 목격하고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고 길조라 하여 복권을 산 것이 다였던 내 감정이 왠지 부끄러웠다. 만약 이 일기장들을 진작에 버렸다면, 오늘 인간 내음 물씬 풍기는 아들의 어린 시절과 영영 재회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아이가 학생일 때는 프라이버시라 생각하여 일기장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미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어른이 된 아들이기에, 부모로서 그 어린 시절의 마음을 조심스레 들여다봐도 이젠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번 연말에 일 년의 날짜별로 분리되어 있는 노트를 사러 나갔다가 점점 기록하는 노트가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연말에 가족에게 손 편지를 써 줄 생각에 손 편지를 사러 있을 만한 매장을 바꾸어가면서 며칠을 다녀보아도 손편지용 편지지는 보이지 않았고, 우체국 용도로 물류나 서류를 보내기 위한 봉투들만 가득했다. 연초에 팔리지 않으면 폐지가 될 운명을 맞이하는 노트들의 수요와 공급이 명확히 갈리기 때문이겠지만, 왠지 과거의 삶의 흔적들이 없어진 듯 마음이 씁쓸했다.
하지만 손때 묻은 일기장에서 느껴지는 이 뭉클함은 결코 디지털이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올해는 아들과 함께 손글씨의 힘을 믿어보려 한다. 핸드폰 일정표에만 의존하던 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올 초부터 다시 노트에 하루 일정이라도 옮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직접 손글씨를 써서 인터넷에 글을 옮겨가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보고 싶다. 26년 전 아들이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마음이 오늘날 아버지인 나에게 큰 울림을 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