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런타인데이에 초콜릿 대신 '이것' 선물한 사연

발런타인데이와 패밀리데이, 그리고 우리 부부의 실속 있는 기념일 풍경

by 김종섭

캐나다 시간으로 내일이 밸런타인데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알려져 있지만, 캐나다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초콜릿이나 꽃을 선물하는 날이다. 남자가 따로 여성에게 사탕을 준다는 '화이트데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남녀가 구분된 두 번의 기념일이 없는 것이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일종의 편리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캐나다의 발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이나 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카드를 주고받거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초콜릿 가게가 늘어선 상가를 지나쳐왔다. 가게 안은 미리 선물용으로 포장된 초콜릿들로 가득했다. 우리 부부는 언제부턴가 발런타인데이라는 기념일을 잊은 채 살았던 것 같다. 세월의 흐름 속에 감흥이 조금은 무뎌진 탓일 테다.

아내는 본래 꽃을 좋아했다. 생일이 아니더라도 꽃을 사서 들고 들어오면 무척 기뻐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쇼핑을 하다가 꽃가게를 지나치며 "꽃 하나 사줄까?" 물어도,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필요 없다고 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기보다 비싼 느낌의 꽃 가격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오래전부터 몸에 배어버린 알뜰한 주부의 시장바구니가 앞선 탓인 듯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한다.

초콜릿 가게 안을 메운 이들은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어쩌면 발런타인데이도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소리 없이 기념일도 정년처럼 사라져 가는 날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하며 초콜릿 가게를 지나쳤다.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옷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했다. 아내는 마침 브랜드 매장에서 재고 정리를 위해 파격적인 할인을 하는 '파이널 세일(Final Sale, 교환·환불 불가 조건의 최종 할인)' 옷이 저렴하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옷을 사주겠다고 말하고 계산을 마쳤다. 사준 옷은 아내의 발런타인데이 선물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 부부는 가끔 일상적인 것보다 가격이 나가는 물건을 살 때면, 아직 한참 남은 생일까지 미리 끌어다 '생일 선물'이라 칭하며 웃곤 한다. 실속을 챙기면서도 기분은 내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올해 한국은 공교롭게도 설날과 발런타인데이가 겹쳐 있다. 캐나다 역시 발런타인데이와 '패밀리데이(Family Day)'인 월요일 공휴일이 맞물려 있다. 한국의 설날처럼 큰 명절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공휴일로 정해져 있고 일부 학교는 금요일부터 휴교에 들어가 긴 연휴를 보낸다. 한인 사회 일부에서는 차례를 지내거나 떡국을 끓여 먹으며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을 맞이하기도 하겠지만, 밸런타인데이와 패밀리데이가 겹친 이번 연휴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 가정도 이번 월요일 패밀리데이에 집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점심 식사를 나누기로 했다. 조상을 기리는 전통도 소중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이 위주가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현실적이고 따뜻한 행사가 아닐까 싶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