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내내 시차 적응이 안돼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모두가 잠든 밤 조용히 방 문을 열고 나와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늦은 오후 시간까지 잠을 자야 하는 뒤바뀐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왔다.
힘겨운 시차 적응 시기를 일주일 보내고 첫 출근을 했다. 걱정했던 것 과는 달리 무리 없이 일상에 복귀가 가능했다.
첫 출근으로 인한 긴장한 탓일까. 저녁식사 후 곧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왼쪽 옆구리 부분 진통으로 인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새벽 시간에 깨어났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무의식적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평상시 잠자리에 예민한 아내가 신음소리를 듣고 깰 만도 한데 오늘따라 세상모르고 깊은 밤에 빠저 있었다. 아마도 하루가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깨어난 짧은 시간 동안 몸에 변화가 구역질과 함께 복부 쪽으로 진통이빠르게 전해졌다. 도저히 참아 내기에는 인내가 턱 없이 부족했다. 아내를 흔들어 깨었다. 아내는 손을 이리저리 유심히 만져보더니 손 부위가 차가운 것이 아마도 급체한 듯싶다 했다. 황급히 상비약을 찾아보았지만 집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 마침 아내가 사용하고 있던 수지침이 있어 손가락과 발가락을 번갈아 가며 피를 뽑아 보았지만 이마저도 진통을 저항하기엔 역부족이다.
자고 있는 작은 아들을 깨어 응급실로 향했다. 오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병원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닌 할아버지를 찾았다.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왜 찾았을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니 진통 속에서도 아들을 의식한 듯하다.
마마보이 같은 인상을 주는 것에 대한 순간 언어의 돌발 상황 같은 것이었다.
종합병원 응급실
다행히새벽시간이라 응급실에 환자 대기 인원이 없었다. 곧바로 일인 병실로 옮겨졌다. 링거 주사를 뽑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위해 진통제도 함께 투약을 했다. 언제 진통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진통이 멈춰 섰다. 그제야 살 만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엑스레이 촬영과 피검사를 병행해 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요로 결석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4mm 정도 되는 작은 결석(돌)이 콩팥 쪽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고 있어 옆구리 부분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진료및 검사를 위한 1인 병실
다행히 요로결석이라는 가벼운 증상 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참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악몽의 시간이었다. 결석 부분이 너무 작아 시술보다는 약물요법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최종 진단 결과를 얻었다. 의학에서 말하는 3대 통증이 있다고 한다. 산통. 치통 그리고 요로결석이 그중 하나이다.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새벽 시간대에 같은 증상의 요로결석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응급실을 찾았던 과거력이 있었다. 전에 진통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은 인내할 정도는 되었다. 물론 지금의 진통이 아프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시는 경험해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말 죽을 만큼 아팠다.
진통제 및 담석 용해제
의료비는 전액 면제이다. 대신에 약 제조비는 의사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별도로 돈을 주고 처방을 받아야 한다. 약값은 의료 혜택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비교적 비싼 편이다. 약국에 $75을 지불했다.
진료를 끝내고 병원문을 나설 때에는 아침을 훌쩍 넘긴 오전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작은 아들 학과 시험이 있는 날인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 걱정이 앞선다.
소변에서 채취된 결석(스페셜 닥터 에게 제출)
단순한 증상일 경우는 패밀리 닥터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중대한 중증 치료를 요할 경우 패밀리 닥터의 소견서를 가지고 스페셜 닥터 (전문의)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캐나다는 개인별 스페셜 닥터가 지정되어 있다.
소변 시 사용하는 거름망
소변볼 때 체내에서 결석(돌) 묻어 나오지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서 준비해준거름망이다. 소변을 보는 순간 돌멩이로 보이는 작은 입자가 거름 방을 통과하지 못하고 멈추었다. 새벽에 고통에 시달리게 했던 바로그것 결석(돌)이었다.
약물 치료도 하기 전에 쾌유를 알리는 기쁜 소식이었다. 남자이기에 산통의 고통은 모르지만, 산고의 고통 속에 산모가 드디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기쁨과도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까, 산모가 죽을 만큼 아팠던 순간을 망각하고 또다시 자녀 출산을 위해 산고의 고통을 겪듯이 왠지 여성들이 순간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진통의 순간이 또 망각이 되어간다. 언제 그토록 죽도록 아팠을까 하는 간사해진 마음을 내보이면서그래도 웃을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