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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08. 2019

그때 그시절 호박잎 쌈밥을 아시나요

옛것이 그리울 때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웠다

의식주의 의미를 새겨본다. 집은 안락함이 주어져야 하고 옷은 자기 몸에 어울리고 이뻐 보이는 성취감이 있어야 좋다. 먹는 것 또한 즐거움이고 맛도 있어야 한다. 먹는 것이 우리 삶 속에 낙이라고 했다. 집밥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색다른 음식을 찾아 떠난다. 이를 두고 우리는 아주 가끔 찾아온 여유라고 말을 한다.

한국인의 정서는 단 하루라도 쌀밥을 먹지 않으면 체내에 움직임이 민감할 정도로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집밥이 체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새로운 음식에 적응 시기가 빠르다. 익숙했던 집밥을 떠나 새로운 맛에 적응의 변신은 빨랐다.

음식은 손맛이고 정성이라 했다. 또한, 고향의 맛이라고 말들을 했다. 엄마의 손끝 움직임에서 만들어낸 음식은 나에겐 더없는 인류 최대의 걸작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엄마의 손맛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성장기를 보내왔다. 시간은 멈추어 주질 않았다 늘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엄마의 손 맛을 떠나보내고 가장이라는 성장의 시대를 맞이했고, 어느 날부터 아내의 손맛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엄마의 손 맛을 닮아 적응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시대의 움직임은 먹는 것을 시작으로 고유히 습성화된 전통적인 것까지 벗어난 인류의 또 다른 먹거리를 사냥해 갔다.

이로 인해 토속적인 음식은 고향 맛이라는  향수로 묻어 두어야 할 시대를 떠나보냈다. 고향은 늘 엄마품처럼 포근했고 정겹고 그리운 곳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늘  넘쳐나고 나눔이 있는 음식이 있었다. 어머니는 서산에 해가 걸려 있을 때쯤 서둘러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분주히 저녁상을 차렸다. 선풍기마저도 없던 시절 방 안의 온도를 더 이상 이겨낼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친 생활에 유일한 지혜였을 것이다.


지금에 돌아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흔히 도심에서 볼 수 없는 풀벌레 소리와 별빛 쏟아지는 시골 풍경은 낭만이 있는 추억이었다고 회상하지만 그때는 모기와 풀벌레의 출연에  한바탕 홍역을 치루어야 하는 지루한 밤을 보냈던 시절이기도 했었다.

모든 것이 힘들고 지치고 불편했다 할지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었다고 스스로 위로를 다. 아직도 고전적이고도 재래적인 방식을 불편해하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뚝배기에 된장을 끌여내고 가마솥 밥 위에 호박순을 올려놓고 아궁이에 장작불을 뻘겋게 집혀 갈 때 타오르고 열기는 고향의 짙은 정서를  닮아갔다.

전철역 후미진 길 모퉁이 바닥에 달랑 신문지 하나만을  펼쳐놓고 호박잎을 다듬고 계신 할머니 모습 앞에 순간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신문지 사이로 펼쳐진 호박잎, 바로 그것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 밥상이었다.

구수한 된장맛은 고향의 흙내음을 닮았다

"할머니 호박잎 한단 주세요 "
몇 번을 재 사용한듯한 꾸깃꾸깃해진 검정 비닐백에 인심 좋게 가득 담아주셨다.
"할머니 얼마 드리면 될까요"
"천 원만 주세요"
늘 농산품은 어딜 가든 노동의 대가도 안될 만큼 인심이 후했다. 할머니의 거친 손에 이천 원을 건네주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퇴근시간에 맞추어 식사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검은 봉투에 담겨있는 호박잎 순을
주방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여보 오늘은 식사 시간이 좀 늦더라도 호박잎 쌈을 오랜만에 먹어봅시다"  할머니가 이미 호박잎을 다듬어 둔 상태라 더 이상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추가 메뉴를 아내에게 주문했다.

호박잎 쌈에 진미는 된장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었다. 된장이 뚝배기에서 끌고 있었다. 잠시 후 고향 음식이 옛 기억의 향수를 담고 현재식탁으로 되돌아왔다.

호박잎 쌈에 숟가락 가득 밥과  된장을 올려놓고 입 크기보다 큰 쌈을 사력을 다해 입으로 밀어 놓는  순간 맛의 전이가 혀끝을 자극한다. 왠지 부족한 듯  예전의  맛이 아님을 즉감적으로 느껴간다. 맛은 변함없는데 혹시 입맛이 바뀐 것은 아닐까, 어딘가 모르게 무엇인가 기대치에 머물지 않았다.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는 속담이 있다. 겉모양이 보잘것없어도 내용은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전통음식 대부분이 그랬다. 지금은 내실보다는 들어내 보이는 미각적 유혹도 있어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시대적 변화에 한계를 드러냈다.

먹거리가 다양화되어가고 이미 가공된 음식을 조리하여 식탁에 올리는 가정도 흔하게 찾아볼 수가 있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정겨움이 점점 실종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빠른 변화를 가져온다면 가정 내 주방의 개념까지도 실종될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시간과 장소 관계됨 없이 간편한 먹거리 사냥에 일회용 인스턴트식품과 외식문화가 합세하여  탈바꿈 식탁문화 시대로 변화함을 실감한다. 음식은  손끝에서 난다고 했다. 오랫동안 만들어온 손맛에 결과이자 정성이 이루어낸 순고함이기도 하다. 

호박잎에 새순이 돋아날때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시대를 거슬러 내려가 시골장터의 정겨움을 찾아냈다. 선택의 여지없이 걸쭉한 장터 국밥 하나만으로 최상의 음식이었다.


시골의 풍경 또한 정겨운 곳이기도 하다. 동네 잔칫날이면 음식 냄새가 온 동네 풍요와 즐거움을 가져왔고 동네 아낙네들의 웃음소리가 모처럼 담장을 넘었다. 이러한 옛 풍경도 동화책에나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전설적인 이야기로  들려올 시대를 맞이했다.

세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나누는 일이 쉽지 않다. 예전의 식탁은 간의 역 같은 존재이고 정류장이기도 했다. 서로의 눈 마주침의 대화가 있었고 가족 모두가 오늘을 위로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격려해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먹는 것보다는 핸드폰 충전이 더 급하고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고유적이고 행복해야 할 권리마저 스스로 유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가 고파본 사람만이 양식의 중요성을 안다고 했다. 또한, 먹어본 사람만이 그 음식의 맛의 진가를 알기에 지금 내 입안에 머뭇거리는 호박잎 쌈 맛에 진실의 추억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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