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 아련한 추억 속에 그리운 사람이라고 대답하는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고. 우산 없이 비를 맞아 보겠다고 감성을 토해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 정서를 빌리자면대부분 파전에 동동주를 연상하지 않을까. 물론얼큰한 탕 종류도 빼놓을 수 없는 비 오는 날 술안주로 제격이다.
시월은 낙엽이 붉게 물들고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다.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월 비는 모두가 감성 비다. 빗줄기의 흐름을 타고 문밖을 나서 보지만 비 오는 날의 풍경은 한국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비가 오면 괜스레 감성이 보태어져 시린 시월을 가슴으로 품어간다. 시월이 되면 한국 날씨와는 달리 밴쿠버는길고도 긴우기철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하다.수시로 비가 많이 내려 밴쿠버는 레인쿠버(Rain couver)라는 애칭을 얻었다. 한주의 일기 예보에는 일주일 내내 비 소식이들어있다.
밴쿠버의 밤은 우리가 꿈꾸었던 밤의 풍경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불나방 같은 밤거리도 술잔 부딪치고 흥청 되는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끔은 이국에서 불나방 같은 밤의 이탈을꿈꾸어 보지만,어디든 예외 없이 코로나 시대의 제한된 삶은 더욱더 절제된 밤 문화에 갇혀 있다.
술이란 항상 이유 없는 이유일지라도 이유가 늘 분명했다. 기쁘거나 기분 나빠한잔, 외롭고슬프서한잔. 안주거리가 될만한 것이 있어도 술을 불렀다. 이처럼 어떤 것이든 이유를 달면한잔의 의미가 되어갔다.
아내와 골프 연습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오랜만에 팝에 들려윙에 맥주 한잔 마시고 갈까"
왠지 술 한잔 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말문을 열었다.
"윙보다는오랜만에 닭똥집 괜찮지 않아요"
아내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닭똥집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닭똥집을 꺼내 드니 순간 귀가솔깃해진다.
"맞다!. 닭똥집이 있었지"
우리는 곧바로 마트로 향했다.
캐네디언들은 닭을 손질하고 남은 닭똥집이나 닭발을 식재료에서 포함시키지 않고 그동안 버려 왔었다. 언제부턴가동양인들이 즐겨 먹는 식재료라는 것을 인식하고 난 이후부터 유일하게 현지인 대형 마트인노프릴즈(Nofrills)라는곳에서 냉동된 닭똥집 팩을 판매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가끔마트에 들려 닭똥집으로 특별한 술안주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냉동된 닭 똥집 CHICKEN GlZZARDS이곳에서는 닭 모래주머니라는 명칭을 붙어 있다.
예전에는 한팩에 2불 정도면 살 수 있었던가격이 3불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 있었다.두 팩을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팩은 냉동실에 보관하고 남은 한팩을손질했다. 우선닭똥집이라는 느낌 때문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것을 늘생각 속에 염두에 두고 있었다. 때론 닭똥집이라는 표현보다는모래집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명칭도달리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원래대로 일상에서 불러지는 닭똥집이라는 말이 더 친근감 있게 다가섰다.
닭똥집을 깨끗하게 물에 씻어낸 후4분의 1 정도의 크기로 잘라내고표면 전체가 잘 익을 수 있도록 두터운 부위는 칼집을 내주었다. 냄새제거를 위해 후추와 맛술을 넣고 후라이팬에서 어느 정도 수분이 빼고식용유를 사용하여닭똥집이꼬들꼬들할 때까지볶아낸후 미리 준비 해 놓았던 양념고추장과 함께양파와 버섯. 호박. 숙주나물. 당근 등과 같은야채를 섞어 살짝 볶아 낸다. 물론 닭똥집에 들어가는 야채는 집에 보관되어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취향에 맞게요리하면 된다.여기서 닭똥집을 요리할 때경험한 팩트가 하나 있다. 미리부터 야채를 넣고 닭똥집과 같이 볶아내면 야채에서 생겨나는 수분으로 인해 닭똥집의 특유의 꼬들꼬들하고 오독오독한 맛을 느껴갈 수 없다. 닭똥집 본래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닭똥집과 야채를 따로 볶아낸 후 같이 곁들여 먹는 방법이 좋다.
닭똥집
6시가 채 되지도 않은 저녁시간 벌써부터어둠이 짙게 다가온다. 방금 전 볶아낸닭똥집과 함께 술 한잔의 의미를 단순하게 담아 놓았다.누군가의 그리움보다,어떤 이의 비 오는 날술잔 부딪침의 사랑이 아닌, 안주가 한잔의 술을 불러준 의미를 담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