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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15. 2021

군대에 가면 찐라면이 있다

라면 예찬

남자들에게  군대 시절 이야기는 한때 빼놓을 수 없는 안주거리와도 같았고 남자의 우월한 자존심과도 같았다. 군 시절 이야기가 잊힐 만하면 가끔 추억을 부른다. 신병훈련 시절에 먹었라면을 지금 으면 어떤 맛일까, 하는 생각을 라면을 먹는 도중 생각해 냈다. 막상 지금 먹어보면 입맛이 변해 그때 그 맛의 추억에서 완전히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사실 생긴다.


훈련병의 하루하루는 취침 중에도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참 왕성한 시기에 군대 짠밥(짬밥) 먹고 돌아서면 굶주린 듯 금방 배가 고파 왔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일요일 아침을 은근히 기다리는 습관이 생겨났다. 훈련이 없는  때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면회를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희망을 걸어 본 것은 더욱더 아니었다. 단지 평상시 아침과 다른 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기대감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음식이 제공되기에 일요일 아침을 그토록 기다리 했을, 듣는 모두가 내 생각과는 동 떨어진 궁금함을 가질 수도 있다.


궁금해하는 주범은 라면이다. 궁금했을 아침의 주범 치고는 식상한 설렘이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배식될 라면을 먹을 생각에 한주를 기다린 것이 설득력 없는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삼시세끼 라면만 먹어도 모자라 야식까지 라면으로 챙겨 먹을 정도로 사회에서 습관이 된 식단이 생활 내부까지 침범하는 연장선이 되었다. 물론 라면을 지속적으로 즐겨 먹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라면에서 나는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역겨워 한동안 라면을 멀리 했던 때도 있었다.


라면이라 하면 펄펄 끓는 물에 막 삶아낸 라면을 보통 연상하게 된다. 군대 라면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라면과는 거리가 멀. 한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이 먹을 라면을 한꺼번에 끓여 내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에 조리방법을 달리 했다. 라면을 스팀에 쪄서 면발을 만들어 낸다. 면에 따로 끓여낸 스프 국물을 부어내면 완성된 라면이 다. 잔치 국수와 조리방법이 흡사하게 닮았다. 스팀에 쪄낸 면프와 함께 끓여 내지 않은 이유로 스프 양념의 고유 맛이 배어나지 않아 사회에서 먹는 라면과는 맛의 차이가 있다.


군대에서 쪄서 만든 밥을 일명 짬밥이라 한다.  흔히 비표준어인 밥이라 말이 더 익숙하다. 라면 역시 쪄서 만든 최종적인 라면의 과정을 거쳤기에 모두는 자연스럽게 찐라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지금은 라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라면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라면의 일반적인 본래의 맛은 변함없이 지켜가고 있다.


라면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크기만큼이나 라면 앞에 붙어지는 이름도 다양하다. 라면에 만두가 들어가면 만두라면이 되었고 김치가 들어가면 역시 김치라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라면에 어떤 것이 첨가하는지에 따라 라면 앞에 평범한 이름을 가진 라면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라면에는 별도로 계란이 들어가지 않고는 라면 특유의  맛 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종에 안고 없는 찜방과 같은 존재감과 같다. 또한, 고춧가루를 더하면 라면의 매콤한 참 맛을 품는다. 마지막으로 끓여낸 라면에 파를 송송 썰어 넣는 센스를 잃어버리면 라면을 모욕하는 일이 되고 만다.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식사 대용으로 봐줄 것인가 , 아니면 간식으로 봐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엔 애매모호함이 있다. 빵과 우유를 주식으로 대신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인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밥을 먹어야 생긴다는 밥심만이 식사의 끝판 왕이었. 그렇다면 라면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으로 봐주어야 맞는 말 일 것이다.


"빵 한 조각 하나 먹고 식사가 되겠어 " 

"밀가루 음식 가지고 한 끼 식사가 되겠어"

예전에 흔히 듣던 이야기이다. 쌀이 아닌 밀가루는 무조건 간식이었다. 순차적으로 간단한 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 시장에 범람해 나가면서 밥을 먹어야 밥심이 생긴다는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세대 변화와 함께 방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술을 과음한 다음날 라면은 해장국으로도 변신했다. 숙취에 좋은 콩나물을 넣고 평상시보다 고춧가루 양을 늘리면 얼큰한 해장국 라면이 되었다.

라면은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손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라면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누구나 주머니 사정 고려하지 않고도 부담 없는 한국인 정서에 딱 맞는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찐라면은 국민의 오빠와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기억 한편에 지속적으로 추억의 이야기를 담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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