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군대 시절 이야기는한때 빼놓을 수 없는 안주거리와도 같았고 남자의 우월한 자존심과도 같았다. 군 시절이야기가잊힐 만하면 가끔 추억을 부른다. 신병훈련 시절에 먹었던 라면을지금먹으면 어떤 맛일까, 하는생각을라면을 먹는 도중생각해 냈다. 막상 지금 먹어보면 입맛이 변해 그때 그 맛의 추억에서 완전히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사실 생긴다.
훈련병의하루하루는취침 중에도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참 왕성한 시기에 군대 짠밥(짬밥)을 먹고 돌아서면 굶주린 듯 금방 배가 고파 왔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일요일아침을 은근히 기다리는 습관이 생겨났다. 훈련이없는 날 때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면회를 올 것이라는기대감으로희망을 걸어 본 것은 더욱더 아니었다. 단지평상시 아침과 다른 식사를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기대감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종류의 음식이제공되기에 일요일 아침을 그토록 기다리게 했을까,듣는 모두가내 생각과는 동 떨어진궁금함을 가질 수도있다.
궁금해하는 주범은 라면이다. 궁금했을 아침의 주범 치고는식상한 설렘이다.하지만, 일요일아침마다배식될라면을 먹을 생각에 한주를 기다린 것이 설득력 없는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삼시세끼 라면만 먹어도 모자라 야식까지 라면으로 챙겨 먹을 정도로 사회에서 습관이 된 식단이 군 생활 내부까지 침범하는 연장선이 되었다.물론 라면을 지속적으로 즐겨 먹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라면에서 나는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역겨워 한동안 라면을 멀리 했던 때도 있었다.
라면이라 하면 펄펄 끓는 물에 막 삶아낸 라면을 보통연상하게 된다. 군대 라면은 우리가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인 라면과는 거리가 멀다. 한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이 먹을 라면을 한꺼번에 끓여 내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에조리방법을 달리 했다.라면을 스팀에 쪄서면발을 만들어 낸다. 면에 따로 끓여낸 스프 국물을 부어내면완성된라면이된다. 잔치국수와 조리방법이흡사하게닮았다. 스팀에 쪄낸 면은 스프와함께 끓여 내지 않은 이유로 스프 양념의 고유 맛이 배어나지 않아 사회에서 먹는 라면과는 맛의 차이가 있다.
군대에서 쪄서 만든 밥을 일명 짬밥이라 한다. 흔히비표준어인 짠밥이라말이 더 익숙하다.라면 역시 쪄서 만든 최종적인 라면의 과정을 거쳤기에 모두는자연스럽게 찐라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지금은 라면은헤아릴 수 없을 만큼 종류가다양하다. 예전에는 지금처럼라면의 종류가다양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라면의일반적인 본래의 맛은변함없이지켜가고 있다.
라면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크기만큼이나 라면 앞에 붙어지는 이름도 다양하다.라면에만두가들어가면 만두라면이 되었고김치가 들어가면 역시 김치라면이라는이름으로 불러주었다. 라면에 어떤 것이 첨가하는지에 따라 라면 앞에 평범한이름을 가진라면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라면에는 별도로계란이 들어가지 않고는라면특유의 맛 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종에안고 없는 찜방과 같은 존재감과 같다. 또한,고춧가루를 더하면라면의매콤한 참 맛을 품는다. 마지막으로 끓여낸 라면에 파를송송 썰어 넣는 센스를 잃어버리면 라면을 모욕하는 일이 되고 만다.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식사 대용으로 봐줄 것인가 , 아니면 간식으로 봐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답을 하기엔 애매모호함이 있다.빵과 우유를 주식으로 대신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인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밥을 먹어야 생긴다는밥심만이 식사의 끝판 왕이었다. 그렇다면 라면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으로 봐주어야 맞는 말 일 것이다.
"빵 한 조각 하나 먹고 식사가 되겠어 "
"밀가루 음식 가지고 한 끼 식사가 되겠어"
예전에 흔히 듣던 이야기이다. 쌀이 아닌 밀가루는 무조건 간식이었다. 순차적으로 간단한 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이 시장에 범람해 나가면서 밥을 먹어야 밥심이 생긴다는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세대 변화와 함께 방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술을 과음한 다음날 라면은 해장국으로도 변신했다. 숙취에 좋은 콩나물을 넣고 평상시보다고춧가루 양을 늘리면 얼큰한 해장국 라면이 되었다.
라면은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언제어디에서나 손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라면만이 가진특별함이 있다. 누구나 주머니사정 고려하지 않고도 부담 없는 한국인정서에 딱 맞는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찐라면은 국민의 오빠와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기억 한편에지속적으로 추억의 이야기를 담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