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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Dec 26. 2022

미루고 망설여온 치아를  발치했다

오복중 하나가 치아라는 사실을 발치를 통해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오늘 미루고 미루워왔던 왼쪽 윗부분 어금니 두 개를 발치했다. 몇 달 전 의사 선생님의  발치 진단 결과를 통보받고도 한동안 고민을 해 왔었다. 몸상태가 안 좋으면 어느 정도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것과는 달리 치아는 기능이 상실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잇몸에 인공뼈를 이식하는 이차적인 방법으로 치아의 수명을 좀 더 늘려 갈 수는 있겠지만 치아 상태에 따라 치료가 가능하지 못한 부분은 발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붓고 잇몸주위에 고름이 가득 차 더 이상 음식물을 씹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미련스럽게도 며칠밤을 통증에 시달려 오면서도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행동을 계속해왔다. 한번 뽑혀 버린 치아는 영원히 소생할 수 없다는 강한 애착이 이유이다.


날이 거듭될수록 더 이상 고통을 견디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통의 강도 때문일까, 발치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확고해졌갔다. 치과에 예약 전화를 했다. 전화를 응대하는 리셉션은 한주이상 예약이 밀려 있다고 난감해한다. 오늘을 참아낼 자신이 없어 발치 결정을 내렸데 한 주 동안 고통을 더 가지고 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손님 잠시만요"'

리셉션이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는 듯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손님 그럼 오늘 12시 반에 시간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의 점심시간을 쪼개어 대기 예약 스케줄에 넣어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치과 예약을 힘겹게 했다는 말에 아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치아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동안 양치질도 게을리한 주인의 행동 때문이라고요"

아내의 말이 맞다. 저녁 식사 후에도 피곤함을 핑계로 그냥 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더 나이 들어 치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게으름을 질타했다.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치아를 관리했다면 아직까지도 건치로 남아 있을 텐데 주인의 게으름에 발치라는 운명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가게 되었다.


예전에도 어금니 하나를 발치한 적이 있다. 발치 전 치과를 몇 군데 내원하면서 치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을 했다. 발품을 판 결과 치과 한 곳에서 긍정적인 방법을 내놓았다. 인공잇몸뼈를 이식하면 십 년 이상은 무리 없이 치아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히 찰나에 뽑혀 버릴 뻔한 치아를 살린 예전의 경험이다. 그때는 한 살이라도 젊었고 치아를 소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했다. 지금은 그때와의 상황과는 다르다. 치아의 소생보다는 발치라는 결과에 승복할 나이가 된 것이다.

어금니를 발치하고 아쉽고 미안한 마음에 사진 한 장을 담아 두었다.

발치를 끝내고 의사 선생님은 잇몸 부분에 상당 부분 고름을 제거하셨다. 며칠 동안 고통만큼 고름의 양도 반비례했다. 최종적인 치료가 끝나고 두 개의 치아가 뽑혀 나간 자리에 봉합수술을 하고 피가 지혈될 수 있도록 봉합 부위에 두툼한 솜을 핀셋으로 밀어 넣었다. 입안에 솜을 꽉 고 두 시간 이상은 있어야 지혈이 된다고 한다. 데스크에서 처방전과 함께 환자가 지켜야 할 수칙을 설명해 주었다. 술담배는 삼가고 특히 음주는 되도록이면 이주일정도는 삼가라는 환자 수칙을 설명해 주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어떤 부위든 관계없이 대부분 술 담배를 금기하는 것이 환자 수칙 중 단골 메뉴이다. 더구나 발치된 부분을 봉합해 놓았기 때문에 음주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주범이다.


식탁에는 팥죽이 놓여 있다. 아내가 씹기 불편할 것을 미리 알고 치과 치료 하는 동안 팥죽을 점심으로 준비해 놓았다. 죽을 먹으면서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졌다. 현재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심리적 식탐이 생겨난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는 죽이 밥처럼 포만감스럽지 않은 예민한 맛의 반응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민들 사이에는 오복(五福)이 있다. 그중 하나가 치아의 건강이다. 치아가 재기능을 하지 못하니 먹는 즐거움까지 앗아가 버렸다. 사실, 나는 미식가는 아니다. 두 개의 치아 부재로 음식물을 씹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치아의 가치는 그동안 느껴내지 못했던 최상의 가치이다. 


연말연시 모임이 늘어가고 있다. 모임의 성격상 술을 마셔야 할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모임에 가서 술까지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왠지 모임 자리가 어색하고 지루함이 생겨난다. 물론 애주가의 입장이기 때문인 이유도 크다. 식탁 한쪽에는 항상 양주가 한 병 올려져 있다. 장식품이 아니다. 저녁시간 반주로 한두 잔 하는 습관이 베여 있으니 애주가가 맞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술은 그림에 떡으로 변신했다. 몸에서 기능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동안 손과 눈, 발 그리고 치아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당연한 존재감처럼 받아 드렸다. 세상의 행복은 부일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다. 모든 것들은 그 자체의 존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 안에 좀 더 월등한 존재감을 가지고 존재할 것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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