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Dec 19. 2022

할머니와 홍시

홍시가 열리면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의 형태를 지닌 탓에 각국의 과일들로 넘쳐난다. 사시사철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는가 하면,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다. 한국 마트에도 한국 과일이 풍성하다. 제철이 지난 홍시가 새로운 변신을 꿈꾸고 캐나다에 상륙했다. 홍시는 가을이 제철이다. 하지만, 홍시의 맛은 겨울에 먹어야 재격이다.


홍시라는 말만으로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다. 세월이 변하고 할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셔도 홍시만은 여전히 할머니를 닮아있길 바랬다.

"홍시가 열리면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어느 노랫말 가사이다. 홍시와 어머니에 관련된 가사를 담고 있지만, 어머니라는 호소력보다는 나에게는 할머니의 추억을 먼저 찾아가고 있었다.

"아 ᆢ할머니!"

한동안 잊고만 있었던 할머니와의 기억을 붙잡는 순간이다.


할머니 댁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안채가 있고 문간 옆으로는 곳간이 정체성을 드러내 보인다. 곳간에는 유일하게 자물쇠가 잠겨있다. 또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사람도 유일하게 할머니뿐이 없었다. 배고팠던 시대의 곳간은 먹을 것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야 부의 상징이 되었다. 할머니 댁은 머슴까지 두고 있을 정도로 부농이었다. 곳간을 달리 표현하자면 안방마님만이 누릴 수 있는 상징적인 보물 1호와도 같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할머니 댁을 자주 가는 이유 중 하나도 솔직히 곳간 속에 먹을 것이 많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곳간 깊숙한 곳에 큰 독이 하나 있다. 독 안에는 가을철 추수해 놓은 홍시를 저장해 두었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곳간에 저장해 두었던 먹거리를 내어주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자 낙이셨다. 할머니의 아랫목은 항상 따끈따끈하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손주에게 아랫목을 내어주시고 잠시 자리를 비우신다. 잠시 후, 어른 주먹보다 훨씬 큰 홍시를 그릇에 담아 숟가락과 함께 가져다주셨다. 두 손으로 잡고 먹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다. 어렸을 때 먹었던 홍시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맛의 가치를 지녔다. 어떤 맛일까를 물어본다면 정확한 표현을 이루어 낼 수 없는 그 맛이다. 긴 세월을 보낸 탓에 홍시의 맛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세월 탓에 입맛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지금 먹는 홍시의 맛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의 맛은 할머니의 손길이 묻지 않은 탓에 옛날의 맛을 못 느끼는 감정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 댁 앞마당 감나무에 홍시가 열리면 할머니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고 기다렸었다. 언제부턴가 세월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더 이상 할머니가 오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홍시의 추억마저 떠나가 버렸다.


지금은 할머니의 흔적이 떠나버린지 오랜 세월을 맞이한 곳간에는 할머니의 사랑의 손길 대신 먼지만 무성할 것이다. 오늘은 홍시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할머니의 모습을 기다리던 어릴 적 동심의 마음은 오간데 없이 인생의 먼 길을 여유 없이 걸어왔다.


할머니를 닮은 홍시가 다시 열리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난감 같은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